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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다. 만화창작전공인데, 당연하게 학생들은 모두 만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스스로 만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쉽게 하지 못한다. 몇 년째 1학년 1학기에 ‘만화의 이해’라는 수업을 하고 있다. 첫 과제로 ‘나는 누구인가’라거나 아니면 ‘만화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만화를 그리게 하는데 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많은 학생들이 어린 시절 만화를 그리다가 혼났던 기억을 만화에 담아낸다. 마음 깊은 곳에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을 꺼내, 이 상처를 긍정적 창작의 동력으로 바꾼다면 모두 좋은 작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이야기하고,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덕밍아웃’이라고 한다. 여기서 ‘덕’은 일본어 ‘오타쿠’를 음차한 ‘오덕’을 뜻하는 말이고, ‘아웃’은 ‘커밍아웃’에서 따왔다. 즉 내가 오타쿠임을 드러내는 일이 바로 덕밍아웃이다. 오타쿠는 일본에서 서브컬처(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서로를 부를 때 사용하는 높임말이었다. 직역하면 ‘댁’ 정도가 되는데, 의역하면 ‘당신’ 정도가 좋을 것 같다. ‘당신도 이 작품을 좋아하세요?’ 뭐 이런 식의 존칭이 점차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일본 용어를 유머러스하게 음차해 사용하는 용어가 바로 ‘오덕’이다. 보통 번역어로는 ‘마니아’ 정도를 사용하는데, ‘오덕’이 더 느낌이 있다.
자, 오덕은 특정 취향에 몰입하는 이들이다. 오덕이 나쁜가? 당연히 나쁘지 않다. 오덕이 누구에게 해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취향에 몰입하는 이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다.
오타쿠 정당조직 사회당 덕후위원회의 깃발 (출처 :경향DB)
만화를 전공하는 고등학생이 나에게 털어놓은 고백이다. “만화를 전공하는 고등학생인데요. 만화는 대부분 십대들이 많이 보잖아요. 그런데, ‘만화 보는 사람=오타쿠’ 이런 공식이 어느샌가 성립돼서 아이들이 만화 보면 오타쿠라고 무시하거나 교실에서 만화를 보면 좀 이상하게 보는 게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몇 년 전만 해도 애들이랑 만화책 돌려보고 많이 그랬는데, 만화학원 다닌다고 말하면 애들이 무시해서 미술한다 하고. 예전에 만화가 애들 보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요즘은 일본 좋아하는 애들이라고 생각해요.”
만화를 좋아하는 애들=일본을 좋아하는 애들=사회부적응자=오타쿠, 이런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그래서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취향을 감춘다. 스스로 ‘일반인 흉내를 낸다’는 의미로 ‘일반인 코스튬 플레이’(일코)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취향을 감추고, 드러내지 못하는 세상은 창조적이지 못한 세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할 때 긍정적 에너지가 폭발한다. 의외로 세상은 무언가에 집중하는 이들에 의해 진보했다. 아주 오래도록 이집트 상형문자는 읽을 수 없는 미지의 문자였다. 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독해한 이가 샹폴리옹이다. 샹폴리옹은 언어를 좋아하는 언어 오덕으로 열여섯이 되던 해에 12개의 언어를 마스터했으며,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암하라어, 산스크리트어, 아베스타어, 중국어를 독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1822년에서 약 2년 동안 로제타석을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만화의 아버지인 데즈카 오사무는 디즈니 오덕이었다. 어린 시절, 집에서 영사기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던 그는 일본에서 <밤비>가 개봉하자 무려 130번을 다시 보았다. 데즈카 오사무는 디즈니의 조형원리를 만화에 적용시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본 만화를 탄생시켰다.
창조란 없는 걸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걸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재조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미친 듯 몰입하는 이들이 필요하다. 샹폴리옹처럼 단지 언어를 배우는 게 좋아 수없이 언어를 익히던가, 데즈카 오사무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좋아 130번을 보게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그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다. 창조산업의 시대, 문화융성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 곁의 오덕을 존중해야 한다. 오덕이 세상을 바꾼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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