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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내기 판매로 물의를 빚었던 어떤 식품회사에서 자사의 커피믹스에는 ‘카제인나트륨’이 들어 있지 않다고 연일 광고를 했다. 프림 속 ‘화학적 합성품’이라고 ‘카제인나트륨’을 설명했고, ‘카제인나트륨이 든 프림이 좋을까? 우유가 든 프림이 좋을까?’라고 질문했다. 멋진 광고모델들이 속삭이듯 묻는 이 질문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나도 그랬다. 어? 내가 먹는 커피에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고?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 중 악당인 조커가 떠올랐다. 조커가 왜 조커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배트맨 킬링 조크>라는 만화를 보면, 그는 원래 만삭의 아내를 둔 무명의 코미디언이었다. 약품회사의 실험실 보조로 일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어느 악당들에게 약품회사를 터는 안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무명 코미디언은 내키지 않지만, “자네 애를 가난 속에서 키우고 싶은 건가?”라는 협박에 굴복한다. 무명의 코미디언은 두 악당과 함께 화학약품 회사로 들어가다 경비원에게 발각당하고 도망가는 그를 배트맨이 쫓아간다. 무명의 코미디언은 화학약품이 가득한 물 속으로 뛰어들고, 그의 얼굴은 초록 머리에 하얀 피부가 되어버렸다. 화학물질이란 보통 이 정도의 느낌이었다. 무명의 코미디언을 희대의 악당 조커로 만들어버린 화학물질이 커피에 들어 있다고? 어디 카제인나트륨뿐인가? 지금은 MSG라 불리는 그 물질들도 화학조미료라고 불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조커의 경우와 카제인나트륨이나 MSG는 사정이 달랐다. 카제인나트륨 중 카제인은 우유 단백질의 구성물질이라고 한다. 우유 단백질의 80% 정도가 카제인. 카제인, 그러니까 물과 섞인 우유 단백질을 가루 형태로 분리하기 위해 소량의 나트륨을 넣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든 가루를 물에 녹이면 다시 카제인과 소량의 나트륨으로 분리되는데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어 하루 섭취량을 제한하지 않는다. MSG의 경우도 비슷하다. 오죽 답답했으면 식품의약품안전처 웹진 ‘열린마루’에서 MSG, 그러니까 글루타민산나트륨은 “사탕수수로부터 추출한 원당을 원재료로 사용하는데, 미생물이 사탕수수 원당을 영양분으로 글루타민산을 만들어내고, 이후 정제 및 결정화 과정을 거친 후 글루타민산이 물에 잘 녹을 수 있도록 나트륨을 붙이면 L-글루타민산나트륨이 된다. 글루타민산이란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가지 아미노산 중에 한 가지로, 모유나 우유, 치즈 등의 유제품과 육류, 감자, 완두콩, 토마토, 옥수수 등 우리 주변 자연식품에 들어가 있는 성분”이라고 기사를 냈을까(식약처 웹진 열린마루 2014·3 ‘식품첨가물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립니다’). 역시 MSG도 평생 먹어도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은 물질로 결론이 났다.

마치 무명 코미디언이 유해한 화확물질에 빠져 조커가 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화학적 합성품이라는 용어는 마케팅 전장에 끌려나가 석유에서 뽑은 물질, 먹으면 뇌신경세포를 파괴하고 급기야 우리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물질이 되어버렸다. 전통적 논란의 재료인 MSG나 카제인나트륨이나 대개 자연상태의 식품에도 포함되어 있고, 자연물에서 얻어지는데 말이다. 모두 불안장사 덕분이다.

할인매장에서 한 시민이 카제인나트륨을 없앤 커피믹스 제품의 광고문구를 읽어보고 있다(출처 :경향DB)


불안장사 혹은 불안마케팅은 ‘한번만 잡솨봐’라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저건 되게 위험하다’라고 말한다. 위험은 불안을 증폭시키고, 불안은 판단을 멈추게 한다. 멈춘 판단은 불안을 피해 더 비싼 선택을 하게 한다. 불안마케팅이 가장 극성을 부리는 분야는 식품과 사교육 그리고 정치다. 기묘하지 않나? 화학품이 아닌 걸 잘 알고 있으면서, 화학(적 합성)품을 먹을래?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한글을, 영어를, 수학을, 미술을 가르치지 않고 있을래? 우리에게 묻는다. 한 번, 두 번 모른 척해도 계속되는 불안 기획은 결국 우리 마음에 불안의 불씨를 되살린다. 불안장사가 사악한 까닭은, 한번 불안증에 빠진 이들은 다른 곳에서도 불안의 이유들을 찾기 때문이다. 결국 평생을 불안과 함께하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화학적 합성품을 걱정하기보다 제대로 된 휴식과 여유를 요구하는 편이 좋다. 불안은 진짜 중요한 걸 요구하지 못하게 한다. 불안의 늪에서 빠져나온 순간, 진짜 필요한 것과 요구해야 할 것이 보인다. 불안장사가 극성을 부릴 때가 되었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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