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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직후 나는, 이 나라의 집권세력에 대하여 어느 지면을 빌려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통절히 자각하고,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있는가? 단 1퍼센트도 없다. 많은 아이들이 물에 잠겨 있는 동안은 잠시 엎드려 있겠지만, 곧 그들은 다시 그들의 오래된 습성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의 뿌리 깊은 무지와 교만, 무교양과 무례함이 빚어내는 거짓과 위선의 정치에 치를 떨며 한없는 무력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한겨레> 2014·5·7)

불행하게도 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지방선거 기간 동안 “반성합니다, 사과합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며 90도로 허리를 꺾어 간절히 빌던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표변해버렸다. 내 예상은 맞았지만, 완전히 맞지는 않았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빨리 그들이 가면을 벗고, 또다시 말도 안되는 행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직도 진도에서는 바닷물 속에서 건져내지 못한 시신들을 찾는 힘든 작업이 진행 중이고 그것을 절망적으로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도, 세월호 참사로 환기된 국가의 책임이라는 문제는 그들에게서 벌써 멀어져 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허다히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밀양에서는 경찰병력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어 오로지 자신의 삶터에서 그냥 살도록 내버려달라고 호소하는 주민들을 무도하게 짓밟는 ‘국가폭력’을 거리낌 없이 휘둘렀다. 이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대한 위헌적인 통제와 탄압이 또다시 시작되고, 정부와 여당은 국회차원의 국정조사에 대해서도 계속 어설픈 핑계를 들먹이며 적당히 넘어가려는 잔꾀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 집권세력의 뿌리 깊은 후안무치한 작태 중에서 가장 비열한 것은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그들의 노골적인 주장이다. 이른바 진보 성향의 후보들이 대거 교육감에 당선되자 이에 대하여 불안과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이해할 수 있다. 진보 교육감 시대의 개막으로 차별적 특권교육의 틀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양심과 염치가 있다면, 어떻게 이토록 노골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언행을 드러낼 수 있을까. 불가사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회원들이 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전교조를 지키기 위한 공동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_ 연합뉴스


불가사의한 것 중에서도 단연코 백미는, 국정을 쇄신한답시고 대통령이 뽑은 새로운 참모들의 면면이다. 그 가운데 결국 총리 후보는 사퇴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나머지 인물들의 경우만 본다 하더라도 단지 한심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대통령이 말하는 ‘국가개조’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교육과 윤리와 도덕에 관계하는 정부기관, 즉 교육부 장관에 가장 비교육적이고, 가장 비윤리적인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난 인물을 지명한 것은 과연 무슨 의도일까.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제자의 논문을 그대로 베끼거나 요약한 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연구비까지 챙겼다-그것도 반복적으로-라는 게 밝혀졌다. 이에 대해서 본인은 당시에는 관행이었다는 식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우리나라 대학들이 썩어빠졌다 하더라도 그런 파렴치한 행위가 대학의 관행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그런 인물을 굳이 교육부 책임자로 앉히려고 하는 숨겨진 이유가 있는지 나로서는 짐작도 안되지만, 만약에 이대로 그가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한 가지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즉, 한국에서 교육부라는 것은 적어도 교육문제에 관한 한, 어떠한 설득력 있는 발언을 할 하등의 권위도 자격도 없는 기관으로, 우리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눈에도, 확실히 각인될 것이다. 대통령이 노리는 게 설마 이것일까?

하기는 한국의 주류 지배층이 과연 교육이 무엇인지, 교육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상식적인 이해를 갖춘 집단임을 입증해 보인 적은, 적어도 내 기억에는, 전혀 없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민주사회라면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불가결한 전제조건, 즉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신념이 거의 전적으로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전제(專制) 체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신민 혹은 노예들을 길러내는 훈련 이외에 어떤 다른 교육이 있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교육의 생명은 어디까지나 ‘자유’라는 사실, 그리하여 교육의 자유라는 게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 것이며, 교육의 자유를 무시하는 게 얼마나 중대한 (인간성에 대한) 범죄인지를 그들은 모른다. 이것은 그들 자신이, 돈과 권력과 헛된 명예에 대한 탐욕을 벗어나서, 스스로 ‘자유인’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누려본 체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들의 근원적인 정신적 빈곤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나라 지배층은 몇 명의 해직교사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국제적 상식을 무시하고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전교조가 ‘공공의 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온갖 음해와 중상모략으로 악선전을 퍼트려온 연장선상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토록 전교조를 혐오하고, 무력화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전교조가 ‘교육의 자유’를 염원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가장 유력한 시민적 저항조직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후퇴를 강요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교조를 비롯한 주요 노동운동, 시민운동 세력이 무너진다면, 안 그래도 독선적인 권력은 아무런 저항에 부딪힘 없이 반민중적, 반민주적 정책을 거침없이 밀어붙일 것임이 명확하다. 이 폭주에 제동을 걸고 민주주의를 되살리려면, 우선 우리들 모두가 (특히 젊은이들이) 축구에 쏟아붓는 정열을 조금만이라도 아껴서 전교조의 운명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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