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김장철을 맞아 ‘귀한 몸’이 된 배추는 한자어 ‘백채’가 변한 말이다. 채소는 대부분 녹색을 띤다. 하지만 배추는 겉만 녹색이고 속은 흰색이다. 그래서 백채(白菜)다. 훈몽자회에 ‘숭채(崇菜)’로 올라 있는 것을 비롯해 옛 문헌에서는 백숭·배차·배채·벱추 등 다양한 이름을 볼 수 있다.
배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 때로 추정된다. 고려 고종 때 발간된 ‘향약구급방’에 배추를 뜻하는 ‘숭’이란 글자가 나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이때의 배추와 지금의 배추는 사뭇 다르다. 옛날의 배추는 지금의 배추에 비하면 몸통 둘레가 절반도 안 되는 등 아주 ‘빈약’했다. 따라서 ‘국민 채소’ 배추의 품질 개량이 절실히 필요했고, ‘한국 농업 기술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가 지금의 배추로 개량했다. 중국 배추에서 한국 배추로 ‘독립’한 셈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도 과거 국제식품분류상 ‘차이니즈 캐비지(Chinese Cabbage)’ 중 하나로 다루던 한국산 배추를 지금은 ‘김치 캐비지(Kimchi Cabbage)’로 구분해 등재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우리의 배추를 ‘하스 쿠리’, 즉 ‘한국 상추’로 부르는 등 배추는 이제 우리 고유종이 됐다.
배추는 재배 시기에 따라 봄배추·여름배추·가을배추·겨울배추로 나뉜다. 요즘 같은 김장철에 생산되는 것이 가을배추이고. 지금 같은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심는 것이 겨울배추다. 겨울배추는 ‘얼갈이배추’라고도 하며, 이것으로 김치를 담그면 ‘얼갈이김치’가 된다.
하지만 얼갈이배추를 ‘얼갈이’로 줄여 “얼갈이를 살짝 데쳐서” 또는 “얼갈이로 담근 김치” 따위로 써서는 안 된다. ‘얼갈이’는 “논밭을 겨울에 대강 갈아엎음”을 뜻하는 말로 배추와는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
한편 “배추의 잎”을 뜻하는 의미로 ‘배추 잎’을 써야 할지 ‘배춧잎’으로 써야 할지 헷갈리던 시절이 있었다. 국어사전에 ‘배춧잎’이 등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표준국어대사전에 ‘배춧잎’이 표제어로 올랐다. 만 원짜리 지폐를 속되게 이르는 말 역시 ‘배춧잎’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NGO 발언대] 보편적 주거권 보장받는 그날까지 (0) | 2022.11.21 |
---|---|
[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죽을’ 고비를 ‘함께’ 살기 (0) | 2022.11.21 |
[이갑수의 일상의 일상] 지금 당장의 눈앞 (0) | 2022.11.18 |
[최현수의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 줄일 걸 줄여야지…허울만 남은 ‘약자복지’ (0) | 2022.11.18 |
[반세기, 기록의 기억] 외세로부터 조선 독립의 동상이몽…서재필의 길, 이완용의 길 (0) | 2022.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