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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건전성 강화 기조 아래 편성된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하여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약자복지의 진정성과 실체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위기 이전부터 여러 국제기구들은 불평등과 격차 심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강조해왔다. 개별 국가에서도 코로나 대응뿐만 아니라 회복 과정에서 직면한 고물가 상황 등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한 경제 여건 속에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한 재정의 역할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약자복지의 방향과 적절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약자복지라도 실천하려는 정부 의지가 예산안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세심하게 묻고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국회는 이를 꼼꼼하게 심의하고 조정하여 국민의 삶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일상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대통령과 정부는 몇 가지 단편적 사례를 들면서 사회복지 분야나 하위 부문별 예산 증가액 규모나 증가율 중심으로 반복해서 설명한다. 국민은 언론을 통해 이러한 설명을 듣고 ‘약자복지’라는 방향 속에 편성된 내년 예산안이 적어도 취약계층의 어려운 삶을 나아지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예산안 발표 이후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언론마다 약자복지와 관련된 기존 지원들이 축소되거나 중단되어 예산이 삭감된 사례를 찾아내고 있다.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고령의 노인들이 생계를 위해 참여하는 공공형 노인일자리 축소로부터 시작된 약자복지의 진정성과 실체에 대한 논란은 보건복지와 고용 분야뿐만 아니라 개별 부처마다 다양한 형태로 취약계층을 지원해왔던 사업들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취약층 예산 싹둑…진정성 의구심

우선 청년층 지원과 관련하여, 대선 공약이나 인수위 당시 발표된 내용보다 정부 매칭 지원이 줄어 내년 하반기에 시행될 예정인 청년도약계좌 도입에 따른 조정을 이유로 중소기업 재직 청년을 대상으로 지원했던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축소되었다. 정책 대상이 소규모에 불과한 시설퇴소 자립준비청년과 은둔형 청년 지원 확대를 강조했지만 한편에서는 청년층과 경력단절 여성 등을 위한 재정지원 일자리도 축소되었다. 정부의 예산안 발표와 설명 이후 약자복지와 관련해서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취약계층 지원 중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국정과제에 반영된 농식품바우처는 2025년이 되어야 전면 확대될 예정이다. 현재 지난 정부에서 시작된 시범사업(약 89억원)이 일부 지역에서 진행 중이다. 그런데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제한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농식품바우처 시범사업을 근거로 기존의 취약계층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지원(약 158억원)과 초등 돌봄교실 아동 과일간식 지원은 당장 내년부터 중단되고 예산(약 72억원)도 삭감되었다. 저소득층 청소년 교육콘텐츠 데이터 지원도 여전히 이를 이용하는 취약계층 청소년이 존재함에도 집행률이 낮다는 이유로 예산(약 30억원)이 전액 삭감되었다. 

국정과제에 담긴 정책마다 고유한 목적이나 계획에 따른 정책 대상의 범위와 시행 시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일부의 정책이 약자복지를 대표하는 것처럼 강조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핑계로 기존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을 축소 또는 중단하면서 예산이 삭감된 전형적인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소규모의 예산이지만 취약계층의 팍팍한 일상에서 그나마 소중하게 느껴지던 지원들이 제대로 증액되지 않거나 아예 중단될 상황에 처하다보니 국회 앞에서 열리는 시민사회단체와 정책 수혜대상이 직접 참여하는 집회에서는 “줄일 걸 줄여야지”라는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언론으로부터 가장 큰 비판에 직면했던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 축소의 경우 다시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는 소식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약자복지와 관련된 예산 증가율 속에는 재정당국 입장에서 증액하고 싶지 않더라도 법령에 규정된 근거(기초연금 등) 또는 위원회 등이 합의한 원칙(기준 중위소득 인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반영했던 자연증가분이 여전히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재인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 정부가 편성했던 첫 번째 예산안조차 당시 국정과제에 반영된 기초연금의 인상 등 주요 정책 공약 추진을 위한 대규모 예산 증액이 이루어졌던 것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상황이다.

예산안의 상세한 정보 공개해야

그럼에도 아직도 고물가 상황에 따른 법정 의무지출 확대로 인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고 정부가 진정으로 약자복지라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정책 추진 의지를 반영한 사례가 무엇인지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몇 가지 사례만 가지고 이를 강조하는 것이 ‘웃프고’ 안쓰럽다. 어쩌면 이는 정부가 예산안 편성 과정에 단순히 자연증가분을 반영한 것인지, 약자복지 관련 정책 추진 의지를 적극 반영한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부 예산안 발표 시, 각 부처별 세부사업 단위로 법령에 근거한 자연증가분에 의한 것인지, 국정과제에 따른 정책 의지와 국민의 정책 수요를 반영한 것인지 명시하여 공개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정부 예산안 편성 과정에 담당 부처와 기획재정부의 당초 입장과 조정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최근 국회의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이 대폭 증액된 것처럼, 정부 예산안을 수정 반영한 결과와 관련해서도 여야를 불문하고 누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적극 노력하여 최종 반영된 것인지를 국민이 알 수 있게 명시하여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약자복지든 보편복지든 국민들의 삶을 위한 예산안 편성과 결정 과정에서 재정당국과 각 부처, 여야를 포함한 정치권이 각각 어떤 입장을 가지고 노력했는지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학계, 언론과 시민사회가 정부 예산안과 국회 예산심사 결과에 대한 엄밀한 평가를 내리고 이러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국민들은 대통령과 정부의 반복적인 설명만이 아니라 정책과 예산을 중심으로 국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진정성과 노력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연재 | 최현수의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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