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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 사건이 있습니다. 그날도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보내고 따사로운 봄날을 맞을 생각에 가슴은 두근댔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날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고, 우리의 시각을 바꿀 중대한 사건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2014년 4월16일 수요일 아침. 

“그러면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내뱉는 이 말이 내 입에서도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뚫린 사회안전망의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온 오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주시했습니다. 전 국민의 눈과 귀는 이미 바다로, 항구로, 그리고 세월호 속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습니다.

올해로 세월호 사건 5주기를 맞습니다. 세월호에 승선했다가 참변을 당한 아이들도 이젠 하늘에서 바뀐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무던히 외쳐왔고, 끊임없이 호소했고, 속절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 외침의 의미를. 우리는 그 외침에 호응하지 못했습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4·16기억저장소’는 ‘기억 투쟁’의 맨 앞에 선 곳이다. 지난 12일 단원고 인근 강서고 학생들이 저장소가 운영하는 4·16기억전시관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아끼던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면 슬픔이 바로 찾아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경황을 살피는 데 시간이 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또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워집니다. 아끼던 사람이 베풀었던 친절이, 그 따스함이, 그 사람이 보여준 사랑이 떠오릅니다. 그 짓궂음이 그리워지고, 다시 티격태격 옥신각신하고 싶어집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밀려오는 이 슬픔과 그리움은 줄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오히려 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아끼던 사람들을 공감해야 합니다. 끝까지 공감해야 합니다. 

지난 3월18일,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분향소와 천막을 거뒀습니다. 그 자리의 의미를 새기는 공간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 같습니다. 광화문 거리를 거닐 때면 역사처럼 가슴에 스며든 아이들의 자취를 되새기고는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숨결을 여전히 느낄 수 있기에 진실을 찾는 작업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진실을 찾는 과정은 시간을 잇는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연속하고,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작용하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이제 아이들이 가르쳐준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아이들이 알려준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하지 못했던 스승 역할을 아이들이 대신 해줬습니다. 뒤늦게나마 우리는 그들이 알려준 희망의 의미를 깨달았기에, 두려움을 떨치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희망을 알려주고 가르쳤다는 증거는 세월호에서 나눈 아이들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운명을 예감하고도 사랑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말한 사랑에서 희망을 봤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끝까지 나눴습니다. 자기 것까지 내주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지막 메시지에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4월을 맞아 윤동주 시인이 쓴 산문 한 구절과 아이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옮기며 글을 마칩니다.

“일반은 현대 학생 도덕이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스승을 섬길 줄을 모른다고들 합니다./ 옳은 말씀들입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나 이 결함을 괴로워하는 우리들 어깨에 지워 광야로 내쫓아버려야 하나요./ 우리들의 아픈 데를 알아주는 스승, 우리들의 생채기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세계가 있다면/ 박탈된 도덕일지언정 기울여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겠습니다./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면 손목을 붙잡고 목 놓아 울겠습니다.”(윤동주, ‘화원에 꽃이 핀다’에서)

“내 것 입어”/ “너는?”/ “나? 가져와야지.”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함석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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