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김미영 팀장입니다. 고객님께서는 최저 이율로 최고 3000만원까지 30분 이내 통장 입금 가능합니다.” 일명 ‘스팸 문자의 여왕’으로 불리는 김미영 팀장님의 메시지다. 2011년 김미영 팀장이 30대 중반의 남자였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대출 문자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이 분은 1년간 총 100억원 상당의 대출을 중개해 7억7000만원의 이익을 챙겼다고 하는데 이 부당이익보다 현실의 김미영 팀장이 남성이라는 사실에 놀란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외로울 때의 특효약으로 김미영 팀장 대신 홈쇼핑을 추천하는 사람도 있다. 약속 없는 주말에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입에 거미줄이 쳐지는 기분이 들 때 홈쇼핑만 한 위로는 없다는 것이다. 훈련받은 쇼호스트 특유의 ‘솔’톤 목소리로 빠르게 반복되는 멘트를, 그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말투를 듣고 있다보면 부대끼던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가끔 목소리에 취해 있다가 쓸데없는 물품을 주문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효과는 만점이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괜히 마음이 헛헛할 때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는 거다. 시시한 질문을 한 후 상냥하고 친절한 언니의 목소리를 몇 분간 듣고 있노라면, 잠깐이지만 조금은 위안이 되곤 했다.


상담원의 모습 (경향DB)


이런 얘기를 하면 네가 ‘궁상떠느라’ 그런 거니, 연애를 하라고 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결혼했거나 아이가 있거나 연애 중이라면 그 사람은 외롭지 않을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결혼이 외로움을 반드시 해소시켜 주지는 않으며 사실 재능, 금전적 성공, 명예, 존경 중 어느 하나도 주관적인 고독감을 막아 주지는 못한다고 한다. 외로움은 배고픔이나 통증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맞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혹은 자주 외롭다. 정호승 시인의 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의 인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터.


하지만 요즘은 외로움마저 외로울 틈이 없다. 자본은 외로움마저 트렌드화하거나 심각한 문제로 바꿔치기한 후 그때그때 다른 해결책을 판매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라는 책에 따르면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직장, 주거, 도덕, 사회 정책을 좌우하면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만성적인 고립감을 부추기고 심화시키는 생활방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한다. ‘늙은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젊은애들이 어머님, 어머님 해가며 싹싹하고 친절하게 대해준다’는 이유만으로 100만원짜리 옥장판을 구입하는 할머니 앞에서 “나이가 들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부도덕한 외판원에게 속아 넘어가기 쉽다”는 해석을 늘어놓는 건 주책에 가깝다.



“인간은 원자나 분자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라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말은 어떤가? 이야기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있어야 가능한 종류의 것이지만 요즘은 새로운 예외가 생겼다. 바로 대화의 상대가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적 접촉의 대안으로 여성은 애완동물을, 남성은 컴퓨터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으며, 타인에게 거부를 당하면 애완동물을 의인화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컴퓨터와 대화하는 프로그램인 채팅로봇 ‘심심이’의 카카오톡(카톡) 친구는 219만명이나 된다.



휴대폰부터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e메일까지 연락수단이 다양해진 만큼 연락을 끊어버리는 ‘잠수 타기’도 쉬워졌다.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디지털 계정을 삭제하거나 답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글을 올리거나 사진을 바꿀 때마다 누군가의 댓글과 ‘좋아요’와 멘션과 문자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존재들이다. “무엇이든 알려면, 심지어 우리 자신을 알려고 해도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C S 루이스의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 김미영 팀장이 아니라.



정지은 | 문화평론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