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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청와대 청년위원회 출범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 창업과 관련해 “부모님이 자식 생각하듯이 한번 도와줬으니 됐다가 아니라 일어설 때까지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정부가 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말 주옥같은 말이다. 창업을 했거나, 하려는 청년들에게는 장마에 비 그친다는 말처럼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나 역시 내 주변에 창업으로 울고 웃는 청년들이 넘쳐난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친구도 최근에 창업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고 참 기뻐했다. 지난 설연휴에는 고향에서 만난 친구가 커피숍을 낸다고 온갖 돈을 다 끌어오고 대출까지 받았단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목 좋은 곳을 찾는다고 나를 끌고 온 시내를 돌아다녔다. 얼마 전에는, 커피숍을 낸 지 1년 정도 된 후배가 운영이 어려워 가게를 닫는다고 했다. 자주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아담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며 맛 좋은 커피향이 시트콤에 나오던 청춘들의 아지트 같아 괜시리 행복했었는데 커피 한 잔 더 팔아주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웠다. 이렇게 내 주변에도 창업을 둘러싼 시작과 끝이 하루에도 몇 건씩 발생하고 있다.


박대통령, 청년위원회 위원들과 웃으며 회의장으로 (경향DB)

하지만 이러한 창업은 어느새 자신의 꿈을 좇는 도전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자발적 창업자보다, 일자리가 없어 창업이라도 해서 살아보겠다는 소위 ‘비자발적 창업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 인구 중에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연령대가 50대, 60대 다음으로 20대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스스로 창업을 선택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20대 자영업자들은 주도적으로 창업을 선택했다기보다 창업으로 내몰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듯하다.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는 문턱은 높은 반면, 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투어 지원하는 청년 창업은 문턱이 낮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더라도 고용 불안이나 저임금 일자리로 인해 안정된 미래를 준비하기 어려운 탓도 있다.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으니 창업이라도 해라.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청년실업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또한 이 기조의 연장선에서 청년창업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좋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하는 대기업들은 손을 놓고 있고, 청년실업을 해결하라는 사회적 요구는 대단히 높다. 이런 조건에서 정부는 ‘창업’이라는 궁여지책의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일어설 때까지 지원하겠다’는 말이 청년들에게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창업을 성과 위주의 일자리 정책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일자리를 책임져야 할 기업과 정부의 책무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외환위기 이후 퇴직금을 받아 치킨집을 낸 아버지와 졸업 후 좋은 일자리가 없어 창업 지원금으로 커피숍을 내는 자녀들의 처지가 무엇이 다를까?


청년 CEO들과 화이팅외치는 안철수 (경향DB)


또한 실패해도 좋을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한 번 실패하면 재기가 불가능한 환경에서 창업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범죄와도 같다. 창업이 활성화되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으려면 실패를 당당히 말할 수 있고, 실패 후의 삶이 실패 전의 삶만큼이나 유지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창업지원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 실패자들을 위한 튼튼한 사회안전망이다. 이제는 창업을 부추기기보다, 지난 정부에서 창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해 줄 정책을 펼쳐 나가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불통과 권위의 리더십을 보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얼마나 창조와 혁신이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왜 삼성은 닌텐도를 개발하지 못하냐’고 호통쳤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똑같은 절망을 청년들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한 말 그대로를 실천해 주기를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드린다.



김영경 | 함께사는서울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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