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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codemo@snu.ac.kr
2010-06-25
요즘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은 희망에너지, 행복에너지, 녹색성장의 힘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TV 광고를 통해 원자력이 연간 12조4000억원의 수입대체효과가 있어 경제를 살리는 에너지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화석연료의 1~2%밖에 되지 않으므로 환경을 지키는 에너지라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 원자력문화재단도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원자력 홍보에 362억원을 투입했다. 이런 광고와 홍보 때문일까? 원자력문화재단의 국민인식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원자력 지지도는 꾸준히 80%를 넘는다.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0년 1월 조사에서는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원전 건설 계약을 했다는 사실에 고무된 때문인지 원전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응답자가 무려 93%로 높아지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다고 믿는 응답자도 꾸준히 증가해 2009년 말에는 61.1%, 2010년 1월에는 71.1%에 달했다. 급기야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은 강력한 수출 효자품목으로서 국부를 창출하는 우리 기술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며 애국주의와 결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의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는 거의 실종된 채, 원전에 대한 문제제기를 불경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그런데 정말 원자력은 희망에너지이자 행복에너지일까? 주목할 만한 사실은 원자력 발전소를 자신의 거주지에 받아들이겠다는 응답자가 2009년 조사에서 26.9%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묘한 이중성”을 발견하게 된다. 원자력이 필요하고 안전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 들어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입지시킬 것인가? 원전 입지에 성공하더라도 소비지까지의 고압송전선 설치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원자력은 현재의 셈법에 따르면 가장 저렴한 전력원이다. 하지만 이 비용에는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해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 비용이 온전히 들어가 있지 않다. 세계 어느 나라도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해본 경험이 없고 이제껏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어 있지 않기에 비용 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저탄소 에너지가 곧 친환경 에너지인 것은 아니다. 원자력 발전에서는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방사능 물질이 발생하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과 안전한 관리에 필요한 시간 범위가 짧게는 1만년, 길게는 10만년 이상이어서 자연에 엄청난 부담을 가하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에 소요되는 우라늄 또한 고갈되어 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재활용법의 하나로 논의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는 핵확산 우려로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기 쉽지 않은 데다 그만큼 위험이 증가하며 비용도 엄청나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핵안전보장 정상회의의 주요 화두는 핵확산 위험과 핵테러 위험이었다. 분단국가인 한국에 국토 면적에 비해 가장 조밀하게, 그것도 소수 지역에 여러 개의 원자로가 집중적으로 핵단지를 이뤄 입지해 있다는 사실은 테러의 위험에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력의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일방적인 홍보와 광고에서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다. 더 위험한 길로 들어서기 전에 보다 긴 안목에서 균형잡힌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원전을 늘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낭비하고 있는 전력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다. 당장의 편리하고 쾌적한, 게다가 낭비적인 삶을 위해 원전 주변지역 주민은 물론 미래세대의 안전한 삶까지 저당잡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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