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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진(염정아)은 극 초반 자신감에 차 있다. 할머니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본인의 열정(정보력)이라는 강남 3대 교육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최적의 환경에 1등 욕심 많은 딸까지 두었다. 거기에 대한민국 최고의 코디까지 합세하니 서울의대 합격이 어려운 목표로 보이지 않는다.

반면 딸을 하버드에 입학시킨 전력에 독서토론회를 주도하는 열정적인 차민혁 교수(김병철) 집의 경우 눈에 띄는 결함은 기민하지 못한 엄마 노승혜(윤세아)다. 한서진보다 한발 늦는 그녀가 차 교수는 영 성에 차지 않는다. 또 총명한 아들을 뒀지만 말 그대로 ‘그냥’ 좋은 부모인 이수임(이태란)네는 한서진 눈에는 순진하게 굴다 큰코다칠 한심한 부류다. 진진희(오나라)팀은 줏대 없는 엄마에 무기력한 아들까지 총체적 난국이다. 딸 강예서(김혜윤)만 합격을 하면 한서진은 가난하고 불행했던 과거를 털고 일어날 것만 같고 인정받는 며느리가 될 것 같다. 아들 영재(송건희)를 서울의대에 합격시킨 명주 언니(김정란)를 보며 개선 행진할 날이 자신에게도 곧 찾아오리라 믿고 있다.

한서진이 차근차근 딸을 합격의 문턱까지 끌고 가는 동안 다른 가정은 각자의 문제로 파행을 빚는다. 반항, 자학, 사기 등 아이들의 모습은 요즘 학생들의 불행한 모습들을 망라한다. 하지만 결함처럼 보였던 지점들이 아이들의 파멸을 막는 구명줄이 되는 건 아이러니다. 노승혜는 가부장적이고 고압적인 남편 차 교수와 이혼까지 선언하며 자식들을 구하고, 진진희는 가출한 수한을 뜨거운 눈물로 끌어안으며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다른 엄마들이 벼랑 끝에서 아이들을 구하는 동안 한서진은 가장 결함 없어 보임에도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 위태로워진다. 더 확실한 결과를 얻고 싶은 조바심과 타고난 악바리 근성으로 가장 공고한 캐슬을 쌓는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사고가 터질 것만 같다. 그녀에게도 종종 심각한 고민이 찾아온다. 첫 번째는 아이를 너무 몰아세우다 탈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자살한 영재 엄마처럼 되면 어쩌지?’ 하지만 ‘예서는 억지로 공부한 영재와 달리 스스로 열심히 하려는 의욕이 크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두 번째는 수임의 아들 황우주(찬희)가 불행을 겪는 걸 외면한다는 죄책감. 하지만 ‘이제 한 학기만 남았어. 목적지에만 가면 이 불타는 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고 그럼 그만이야’라며 다시 한번 자신을 설득한다.

김주영 선생(김서형)은 맹목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서진의 거울이다. 영재의 탈선이 부모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달콤한 말. 한 학기만 넘기면 된다며 빼돌린 중간고사 시험지를 내미는 그녀의 말. 그건 김주영 선생의 말이지만 한서진이 바라던 것들이다. 다른 길을 갈 수 있었음에도 그 길을 굳이 걷는 건 한서진이다.

19회에 가서야 한서진네의 결함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바로 예서의 유리 멘털. 예서는 잠을 못 이루며 흔들린다. 예서가 전자레인지에 우유를 터뜨리지 않았다면 한서진은 중도 포기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성공을 향해 가는 데 흔히 걸림돌이라 불리는 유약한 마음이 구원의 단서가 된다는 아이러니를 반복한다.

이 드라마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위 0.1%가 모여 사는 배타적인 공간을 밖에서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길 바랐을까? 오직 내 아이는 이 입시 지옥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이 지옥행 열차에서 함께 뛰어내리자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SKY캐슬>에서 지독하게 자식들의 성공에 집착하는 주요 인물들은 한서진, 차 교수와 같은 서민 출신들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상류 사회를 조롱하는 데 방점이 찍힌 풍자극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선동극처럼 느껴진다.

사회를 공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덕분이다. 시청자 중에는 예서가 서울의대에 합격하는 것을 바라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 응원하는 기분일 수도 있지만 마음을 좀 다잡을 필요가 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부러워서 따라갔다간 끝장나는 게 이 게임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이기기 어렵고, 이겨도 지는 게임은 모두 함께 그만두는 게 상책이다.

<김신완 |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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