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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진만은 딱 한 달을 예상했는지 모른다. 더도 말고 한 달만. 눈 딱 감고 한 달만 고생해보자.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거야.

후에 진만의 행적을 쫓아 면 소재지에 위치한 모교까지 내려간 정용은 계속 진만의 마음을 짐작하려고 애썼다. 경찰이 알려준 진만의 후불 교통카드가 찍힌 마지막 행선지가 그들이 함께 졸업한 D대학교였다. 거기 학생식당에서 사천오백원짜리 백반 정식을 먹은 것도 기록에 남아 있었다. 기록은 거기에서 끝나 있었다. 이후에는 다른 사람의 증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 한 달 전쯤이었을 거요? 저녁장사 준비하고 있는데 불쑥 들어오더라고요. 전단지 붙여놓은 거 보고 왔다고….”

진만이 일했던 프랜차이즈 치킨집 주방 이모는 출근길에 만난 정용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눈치를 봤다. 치킨집 사장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진만이 본 전단엔 ‘홀 서빙 알바 구함’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숙식 제공 가능, 성실하게 오래 일할 사람 환영’.

“여기가 저쪽에 혁신도시가 들어서고 나서 장사가 잘됐거든요. 홀에도 맥주 손님들이 꽤 있고 배달도 많고….”

진만은 그곳에서 오후 4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하루 9시간 일했다고 한다. 이 주에 한 번 정기휴무가 있었고, 식사는 오후 5시와 자정, 두 번 제공되었다고 한다. 월급제였는데, 숙식비용은 따로 제했다고 한다.

“나도 그냥 슬쩍 들은 말인데, 일한 지 일주일쯤 지난 뒤에 가불을 했다고 그러더라고. 다 한 건 아니고 월급의 반만….”

정용은 진만이 머문 방도 둘러보았다. 그곳은 방이라기보단 흡사 창고와도 같았다. 라꾸라꾸 침대가 하나 있고, 업소용 케첩 박스와 냅킨 박스가 한쪽에 위태롭게 쌓여 있는 방. 바닥엔 삼선 슬리퍼 한 짝과 낡고 오래된 TV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씻는 것은 홀에 붙어 있는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한다.

“혹시 걔가 휴대폰 쓰는 거 못 보셨어요? 휴대폰도 아예 안 돼서….”

“몰라요…. 우리가 바빠서 서로 신경 쓸 틈이 있나….”

그녀는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를 했다. 정용은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면서 계속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는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한데, 왜 얘가 배달을 했죠? 홀 서빙 알바인데….”

“바쁘니까 그랬겠죠. 내 일 네 일 따질 일이 있나.”

“얘는 오토바이 면허증도 없는데요….”

정용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녀가 잠시 그를 노려보았다. 그 눈에서 정용은 불안과 초조를 함께 보았다. 또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나한테 자꾸 그런 거 묻지 마요. 가뜩이나 나도 심란해 죽겠는데.”

그녀는 다시 개수대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턱 근육이 빗금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진만은 그곳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닷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밤 11시21분, 혁신도시에 위치한 한 아파트로 배달을 나가다가 생긴 일이었다. 야산을 우회하는 국도 코너길, 그곳이 진만이 오토바이와 함께 넘어진 장소였다.

정용은 치킨집에서 나와 사고 장소까지 직접 걸어가 볼 작정이었다.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치킨집에서 주방 이모가 뒤따라 나왔다.

“저기 잠깐만….”

그녀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정용에게 치킨집 홍보용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명함 뒷면에 빠르게 흘겨 쓴 전화번호가 하나 적혀 있었다.

“종민이라고… 같이 배달하던 얘예요. 그래도 얘하고 말도 자주하고 밥도 같이 먹고 했으니까….”

주방 이모는 그 말을 하곤 다시 서둘러 치킨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알려줬다는 말은 하지 말고. 그녀는 그 말도 잊지 않았다.

진만이 죽었다. 늦은 밤, 진만이 몰던 오토바이는 국도를 달리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중앙선을 침범했다. 그리고 때마침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던 1톤 트럭에 2차 사고를 당했다. 정용은 그 말을 경찰에게서 전해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정용은 주방 이모가 전해준 명함에 적힌 연락처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최종민.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전화는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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