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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맞다. 분명 진만의 흔적이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은 방에서 입고 돌아다녔던 감청색 반바지와 회색 반팔 티셔츠가 의자 등받이에 마치 개수대 위 고무장갑처럼 맥없이 걸쳐 있었다. 배낭은 침대 바로 옆에 모로 누워 있었고, 양말과 속옷이 함께 들어 있는 쇼핑백은 간이옷장 손잡이에 걸려 있었다. 그 외에 짐은 거의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칫솔과 치약이 전부였다. 환기가 잘 안되는지 방에선 계속 락스 냄새가 났다.

정용의 휴대전화에 낯선 전화번호가 뜬 것은 어제 오후의 일이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스팸이나 대출 안내 전화라고 지레짐작 무시했겠지만,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살고 있는 광역시 지역번호가 앞에 붙은 것도 어쩐지 찜찜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한빛고시원, 이라고 했다. 정용이 살고 있는 원룸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시원.

“아니, 우리도 답답한 게요, 보름 넘게 들어오지 않고 있거든요. 전화도 안 되고 짐도 그대로 있고…. 이렇다 저렇다 말이 있어야 새 입주자도 들이고 하지요.”

여자는 보증인 연락처에 적힌 번호를 보고 연락했다고 한다. 정용에게 그 말은 처음엔 조금 우쭐하게 다가왔으나 이후 계속 마음 아픈 음성으로 남게 되었다. 진만에게 보증인이 될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렇게 믿었던 단 한 사람.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정용은 일단 고시원에 남아 있던 진만의 짐을 모두 원룸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진만의 휴대전화는 계속 꺼진 상태였고,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정용은 진만의 가족 그 누구의 연락처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안양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같이 살고 있다는 것, 어머니는 이혼한 뒤 따로 살고 있다는 것, 그게 진만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시원에 짐 찾으러 들렀다가 다시 원룸으로 찾아올 거야. 또 무슨 이상한 회사 영업사원으로 들어간 거 아닌가? 어디 가서 사기나 당하지 말지. 정용은 일부러 다른 걱정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정용은 다음날 오후 알바를 나가다가 말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경찰 지구대로 들어갔다. 계속 안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기… 실종신고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지구대엔 모두 세 명의 경찰이 있었다. 데스크에 두 명이 있었고, 그 뒤에 조금 작고 늙수그레한 경찰이 앉아 있었다.

“실종신고요? 누굽니까? 얘예요? 몇 학년인데요?”

뒤에 앉아 있던 경찰이 앞쪽으로 나오면서 연달아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랑 같이 살던 친구인데요….”

“같이 살던 친구인데? 때렸어요? 여성분을?”

경찰은 말이 앞섰다. 그는 벌써 한 손에 볼펜을 쥐고 있었다.

“아니요. 남자인데요.”

정용이 그렇게 말하자, 경찰은 볼펜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근데 왜요? 다 큰 남자를 왜 찾아요?”

경찰 말에 따르면 다 큰 남자는 엄밀히 말해 실종신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출인, 이라면 모를까.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노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면 가출이 맞다고 했다.

“그래도 벌써 열흘 넘게 전화도 안 되고 있거든요… 위치추적 같은 거라도 어떻게…?”

정용은 그러면서 속으로 더 많은 말을 했다. 돈도 없는 애고요, 기술도 없는 애예요. 남들한테 잘 속고요, 남들 위한다고 한 일들이 대부분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해요. 혼자 있는 걸 잘 못 참는, 어린애 같은 애예요….

“가족도 아니라면서요? 이게 가족이라고 해도 성인은 본인이 원치 않으면 찾아도 위치 같은 거 못 알려줘요.”

정용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혹시 돈 같은 거 빌려줬어요? 그러면 그냥 고소를 하는 게 빠를 수도 있는데.”

데스크에 앉아 있던 젊은 경찰이 말을 보탰다. 정용은 잠깐 생각하다가 지구대 밖으로 나왔다. 날은 더웠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별일 없을 거다, 별일 없을 거다. 정용은 휴대전화를 꺼내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기만 했다.

경찰에게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의 일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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