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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날, 진만은 PC방에 있었다.

게임을 하러 간 것은 아니었고, 이런저런 구인 사이트를 둘러보기 위해 간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론 그냥 게임만 하고 말았다. 일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고, 있다고 해도 대부분 영업직이나 경력직뿐이었다. 십 분이나 둘러봤을까, 진만은 그냥 롤에 접속하고 말았다. PC방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었는데, 서너 명씩 같이 온 일행으로 보였다. 몇몇은 대학생인 듯 온라인 강의 창을 열어둔 채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야, 이러면서 게임하니까 뭔가 졸라 보람찬 일을 하는 거 같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친구들이 낄낄거리면서 “너, 조심해라, 그러다가 인생 최초로 A+ 받을라?” 되받아치기도 했다. 전염병이 돌든 실직자가 늘든 밖에 비가 내리든 말든, PC방 안은 안온하고 말랑말랑하고 안전해 보였다. 그게 진만을 조금 더 울적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진만은 지금 실직 중이었으니까. 이곳에서 들을 강의도 없었으니까.

그 할머니가 PC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진만은 그 할머니를 알고 있었다. 진만뿐만 아니라 이곳 근처 식당이나 카페를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할머니였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때타월이나 수세미, 면봉 같은 것을 파는 할머니. 허리는 잔뜩 굽었고, 하얗게 센 파마머리에 언제나 삼선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 할머니는 다짜고짜 남의 영업집 안으로 들어가 그곳 손님들에게 물건을 내밀며 또 다른 영업을 했는데, 물건값이 예상보다 좀 비쌌다. 진만도 두 번 김밥천국에 앉아 있다가 할머니가 내민 면봉을 얼떨결에 받아 들은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오천 원을 달라고 했다. 편의점에선 천 원에 파는 건데… 진만이 어어, 거리며 망설이자 할머니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사지도 않을 거 번거롭게 구네….” 할머니는 그렇게 작게 투덜거렸다. 진만은 기분이 나빠졌다. “잘했어요.” 할머니가 나가자마자 김밥천국 주인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했다. “저, 할머니, 아주 상습범이라니까요. 갑부라는 소문도 있고… 그렇게 사주지 말아야 정신을 차리지.” 진만은 아무 말 없이 삼천오백 원짜리 떡라면을 먹었다.

PC방으로 들어온 할머니는 좌석마다 돌아다니면서 손님들에게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젊은 남자들은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모니터만 노려보았다. 할머니는 굴하지 않고 한 명 한 명 찾아다녔다. 이윽고 할머니는 진만에게도 다가왔다. 진만은 슬쩍 할머니가 내민 검은 비닐봉지 안을 바라보았다. 고사리였다. 줄기가 길고 맥이 없는, 누군가의 주름 같은 갈색 고사리. 훅 비린내와 함께 농약 냄새가 퍼졌다. 할머니는 그것 역시 오천 원에 팔고 있었다. 진만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쉬이 포기하지 않고 재차 검은 비닐봉지를 진만의 얼굴 앞으로 더 가까이 내밀었다. “아이, 진짜!” 순간적으로 진만의 입에서 짜증이 튀어나왔다. 그 목소리는 진만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몇몇 남자들이 모니터 너머로 진만을 바라보았다. 알바생도 진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진만의 짜증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진만의 어떤 감정선을 건드렸다. ‘왜 자꾸 이러는 거예요, 할머니… 할머니 이러고 다니는 거 모두 다 불편해 한다고요! 할머니만 어려운 거 아니고, 나도 힘들다고요! 고사리가 지금 여기서 말이 되냐고요, 말이….’ 진만은 그 말들을 모두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러나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대신 그는 화난 표정으로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할머니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진만의 모니터 옆에 고사리를 놓아두고 뒤돌아섰다. 터덜터덜, 할머니가 끄는 슬리퍼 소리가 진만의 귓가에 오래 남았다. 모니터에선 비린내가 났다.

“그게 뭐야?”

자취방으로 돌아온 진만을 보며 정용이 물었다.

진만은 아무 말 없이 고사리를 싱크대 위에 올려두었다. 

“뭐야, 고사리네. 쓸데없이 이걸 왜 샀어…?”

정용이 묻자, 진만은 침대에 누우면서 말했다. 피곤이 몰려왔다.

“그냥… PC방에서 샀어.”

“PC방에서? 고사리를? 이게 무슨… 아이템이냐?”

그러게. 생각해보니 그게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시절이니까.

“라면에 넣어 먹으면 맛있대.”

진만은 귀찮은 듯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라면에?”

정용이 고사리와 진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야, 이거 다 먹으려면 한 박스는 있어야겠는데….”

진만은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기호 소설가 광주대 교수 antigi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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