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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을 접고 민주당과 합쳐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로 함에 따라 6·4 지방선거 판세가 급물결을 타고 있다. 안 의원이 100년 정당이라면서 호기있게 추진하던 ‘새정치연합’은 발기 선언을 하자마자 깃발을 내렸으니, 싱겁고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 의원이 이와 같은 결정을 하게 된 동기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창당은 돈도 제법 많이 드는 작업인데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출마하려고 줄을 서지도 않았다. 모이는 사람은 많았지만, 좋은 사람은 별로 없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입당을 부탁하는 것이 그간의 모습이었다. 신당을 만들어 선거에 참여한들 새누리당에 좋은 일만 할 것임이 분명해 혹시 민주당을 주적(主敵)으로 상정하고 탈레반 전술을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자아냈다.

‘새정치’를 하기 위해 정당을 만든다는 발상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하지만 그 이상(理想)이 아무리 훌륭해도 소선구제를 채택한 한국에서 제3당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김종필 전 총리의 자민련과 이회창 전 총리의 선진당은 지역기반을 갖고도 10년과 5년을 버티다 문을 닫았다. 좋은 꿈만 가지고 의기투합해 만들었던 고만고만한 정당들의 행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당과 선거라는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음을 뒤늦게 깨달은 안 의원이 역부족을 느끼고 민주당과 합치기로 결심한 것이며, 야권 분열로 인한 선거 참패를 눈앞에 두고 고민하던 김한길 대표 역시 현실적 판단이 앞섰을 것이다.

김한길-안철수의 첫 만남 (출처: 경향DB)


안 의원 측과 합류하게 된 민주당은 지방선거 참패라는 악몽에서는 벗어났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민주당 지지율이 이렇게 저조한 데는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도 있지만, 친노니 뭐니 하는 파벌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신당 창당을 기회로 삼아 쇄신을 한다면 낡은 이미지를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큰 문제는 기초자치단체 선거에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한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약속이 불러올 파장이다.

2012년 대선 때 경쟁적으로 나온 정치쇄신 공약은 현실을 도외시한 측면이 없지 않은데, 기초단체 공천 폐지도 그러하다. 필자는 대선 때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 정치쇄신 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필자는 인구가 적은 시·군과 구의 경우는 몰라도 인구가 수십만명에서 100만명에 이르는 시도 공천을 폐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 측과 안철수 후보 측에서 모두 공천 폐지를 내걸었기 때문에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기초단체 공천이 문제라고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군·구는 주민 살림을 책임지는 행정단위이기 때문에 구태여 정당이 간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 10만명 미만의 군이면 모르되 수십만 인구를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해 그런 논리를 적용할 수는 없다. 둘째, 시장·군수·기초의원 후보 공천을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사실상 좌우하기 때문에 아예 공천을 없애야 국회의원이 지방행정을 좌우하는 폐해를 없앨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호남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기 때문에 기초단체 후보 공천과정에 비리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 지역구가 3~4개 군을 포함하는 경우라면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인구가 100만명 되는 수원시나 성남시 같은 경우라면 그런 우려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기초단체 후보 공천을 없애면 가뜩이나 하부가 취약한 한국 정당의 구조가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정당은 공직선거에 후보자를 내는 것이 기본 목적이고, 기초의원은 정당의 풀뿌리 조직이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날 신당은 새누리당과 무관하게 기초선거에 공천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선거를 치를 경우 큰 혼란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공직선거법이 무소속 출마자는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있어 민주당은 풀뿌리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다.

소망스러운 것은 지금이라도 새누리당이 이 문제에 대해 야당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기초단체 공천 폐지는 대선 공약이었는데, 새누리당은 원내대표가 간단하게 폐기했으니 그것부터가 상식을 벗어난다. 신당 추진 측도 우선 군과 자치구 선거부터 공천을 폐지하는 안을 갖고 새누리당과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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