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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되어간다. 이명박 정부 5년이 지긋지긋했던 사람들은 누가 해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서 총선과 대선을 치른 필자가 가졌던 기대는 그것 이상이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노무현·이명박 정권 10년 동안 극심했던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개혁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박근혜 정부는 적어도 독선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소통’과 ‘대화’라는 시리즈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진영논리와 불통을 치유해보려 했던 경향신문도 그런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2011년 11월, 박 대통령은 김호기 교수와 필자가 진행한 ‘대화’ 시리즈에 마지막으로 등장했는데,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정치를 너무 보수와 진보의 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매사를 진영논리로 풀어가는 우리 정치를 비판한 것으로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이상돈 위원과 악수하는 박근혜 후보(출처 :경향DB)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복지·일자리’ ‘투명하고 깨끗한 정부’를 ‘국민과의 약속’으로 내세웠다. 새누리당은 “보수가 바뀌면 나라가 바뀝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과거 한나라당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변신을 했고, 그 덕분에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변인 임명부터 꼬이기 시작한 인사 난맥상이 새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그 후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갔는가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박 대통령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대신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은 갈등과 분열을 확산하는 진영논리 메시지를 내보내는 데 몰두했다. 매사에 ‘종북 운운’하는 몇몇 의원들과 ‘불통’을 자랑하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좋은 이미지를 줬을 리가 없다. 문제는 이런 메시지의 배후가 박 대통령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데 있다.


집권 2년차에 들어선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도마에 올라 있다. 임기 초에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폐쇄 사태 등 사건·사고를 잘 처리해 40%대로 주저앉았던 지지율이 한때 60%대로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렇게 내세웠던 ‘대통합’ ‘경제민주화’ ‘정치쇄신’이 집권 1년차를 거치면서 사라져 버렸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괴물처럼 커져서 정권의 정당성에도 흠집을 내고 있지만 그것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어느 언론인은 “대통령이 대선 전(前)과 후(後)에 다른 사람 같다”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무슨 조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 대선 기간 중에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기분이 든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래도 2008년 총선 때 친이계에게 배신당한 후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일갈(一喝)했던 박 대통령이지 않은가, 하고 기대를 걸었다. 박 대통령의 ‘신뢰’를 신뢰했던 것이다. 그리고 임기 첫 해가 덧없이 흘러갔다.


집권 1년차를 별반 소득 없이 보낸 가운데 우리나라는 거대한 ‘부채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하버드 대학 니얼 퍼거슨 교수는 공공부채와 개인부채를 합친 총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하는 국가엔 ‘거대한 쇠퇴’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형상이다. 막대한 공공부채의 과반이 공기업 부채이고, 그것의 절반이 이명박 정권 시절에 생긴 것이다. 이런 정권을 인수받고도 전 정권을 사정(司正)하지 않는 정부는 무능하거나 무지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던 중 박근혜 정부는 갑자기 코레일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그 방법이 생뚱맞은 수서발 KTX 자회사다. 그리고 노사 간, 여야 간, 그리고 정부와 비판세력 간에 대(大)갈등이 폭발했다. 정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가 공공부채 감축과 공기업 개혁의 첫 단추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겨우 수서에서 평택까지 철로를 새로 놓는 수서발 KTX를 자회사로 만들면 경쟁이 생겨서 철도사업이 정상화된다는 논리는 듣기에도 민망하다. 철도가 철도와 경쟁을 한다는 논리 자체가 거짓말이고, 코레일의 부채 14조원 중 10조원은 정책 실패로 인한 부채이기 때문이다.


사상 최장의 철도파업에 대처하는 총리, 부총리, 그리고 관계 장관들의 모습은 만화의 한 장면이었다. 평소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무성 의원이 막후에서 파업을 풀어냈으니, 무턱대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이들은 더욱 우습게 됐다. 공기업 개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부의 논리와 능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셈이다. 어떤 개혁이든 개혁은 어렵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정부가 개혁을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의 브랜드인 ‘신뢰’부터 회복해야 할 것 같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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