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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피로감 때문인지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도가 많이 올랐고 문재인 대표의 지지도 또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잠시 지지했던 ‘부동층 유권자’(swing voters)는 이미 지지를 철회했고, 고정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기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들지 않더라도 집권 10년은 짧지 않은 세월이며 유권자들은 항상 변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권교체에 대한 여망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유권자들은 아무리 성공한 정권이라고 할지라도 선거에서 단순히 그런 결과에 입각해서 투표를 하지는 않는다. 유권자들은 시대에 걸맞은 정신을 반영하는 정책과 인물을 제시하는 정당을 지지하기 마련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의 영국 보수당이 1945년 7월 총선에서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에 참패한 것도, 1946년 미국 선거에서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민주당이 참패해서 상원과 하원이 모두 공화당 지배하에 들어간 것도 그런 정서와 관련이 있다.

비슷한 현상은 1992년 미국에서 다시 일어났다.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로 이어진 12년간의 성공적인 공화당 정권 기간 중 냉전이 종식되는 등 큰 성과가 있었음에도 유권자들은 1992년 선거에서 전후세대인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을 선택했다.

성공한 정권도 선거에서 수명을 연장 받기가 이처럼 쉽지 않은데, 하물며 실패한 정권을 연장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보다 그것을 잘 알았던 정치인이다. 이명박 정권을 인수해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명을 바꾸는 등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도모한 끝에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슬로건에 불과했음은 이제 분명해졌다. 지난 2년간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통합하기는커녕 오직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다지는 방식으로 정부를 이끌어 왔다. 변변하게 하는 일도 없이 그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그리고 툭하면 제기되는 색깔론에 편승해서 실정과 의혹을 덮어 왔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야당의 지리멸렬에 힘입어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자민당 정권을 보고 위안을 삼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베 정권의 우경화는 외연 확대 없이 자기의 고유한 지지기반을 안고 간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와 비슷하다.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이나 역사의식은 퇴폐적이지만 그래도 일본 자민당은 4대강 사업이나 해외자원개발 같은 정권 차원의 대형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일본의 국가기관은 선거과정에 불법적으로 개입하지도 않았다.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은 내년 총선에서 또다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이 두 가지 아젠다를 선점해서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부도를 낸 공약을 다시 꺼낼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또다시 당명과 색깔을 바꿀 수도 없을 것이다.

연말정산 파동, 담뱃값 인상 등으로 인해 배신감을 느끼는 국민들도 부쩍 늘어났다. 사정이 이렇다면 새누리당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결국 지역과 이념뿐이 아닌가 한다. 구태의연한 방식에 의존해서 선거를 치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같은 상황 변화는 야당에 기회가 되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끌어오기 위해선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새정치연합은 통합진보당 잔존세력, 그리고 주한 미국대사에 칼을 들이댄 시대착오적인 무리들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물론 새정치연합은 이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런 미온적인 자세로 부동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는 없다. 경제·사회 정책에서도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 단순하게 부자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식의 공약만으론 한계가 있다. 최소한 우리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모델이라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는 ‘잊혀진 사람들’(forgotten men)과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논쟁에 식상해 있으면서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조용하게 갈구하는 국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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