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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을 합의로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같이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밝히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문제가 된 개정된 국회법 조항은 국회 상임위원회가 시행령이 법률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시행령의 수정 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그러면 관련 부처의 장은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이 조항에 대해 이종걸 야당 원내대표는 그것이 강제적이라고 보지만 유승민 여당 원내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는 여야가 입장을 통일하라고 촉구하더니 이제는 거부권을 행사할 기세이다.

청와대는 이 조항이 권력분립 원칙에 위반되어 위헌이라고 보는 것 같다. 대통령제 국가는 3권 분립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은 국회다. 그래서 헌법도 그 편제가 입법, 행정, 사법부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이 3부 위에 존재하도록 했는데, 유신헌법은 헌법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법률을 제정하며 그 법률에 의거해서 대통령이 집행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에 있어서 1차적 권한을 갖게 되는데, 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대외정책 권한이 비대해져서 ‘제왕적 대통령’ 논란을 야기했다.

시행령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 국회는 입법권자로서 시행령의 일탈을 감독할 권한을 갖고 있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회가 법률을 위반한 시행령을 직접적으로 무효화시키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다. 즉 국회가 세월호 조사위원회 담당관을 민간인으로 임명토록 하는 법률을 통과시킨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이 법률은 기존의 시행령을 무효화시키게 된다. 이와 별도로 국회가 문제가 된 시행령을 의결로서 무효화할 수 있다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함이 없이도 똑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잠들어 있던 사이에 여야 지도부가 합의해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은 후자와 비슷하다. 다만 관련부처의 장이 ‘처리’한다고만 되어 있어서 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이 조항이 행정부에 대해 시행령을 개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행정부의 시행령 제정권을 침해한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시행령 제정은 국회가 위임한 한도 내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입법기관인 국회가 어떤 시행령이 국회가 위임한 한도 내에서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입법기관으로서의 고유한 권한이자 의무라고 하겠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1일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개정 국회법 등 당청 갈등에 대한 비판을 듣고 있다. (출처 : 경향DB)


1983년 미국 대법원은 의회가 행정부의 행정입법을 무효화 할 수 있도록 한 입법적 거부(legislative veto) 제도를 위헌으로 판시한 적이 있다. 행정부에 의한 위임입법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자 도입되어 광범하게 운영되었던 입법적 거부 제도가 통째로 위헌으로 판정받은 것이다. 대법원은 법률안 제정을 위해선 상하 양원 통과가 필요하고, 대통령은 상하원을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입법적 거부는 한 개의 원(院)에 의해서도 행사될 수 있으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기회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 위헌으로 판시했다.

1983년 미국 대법원 판결에 의해 위헌 판정을 받은 입법적 거부는 지금 문제가 된 국회법 개정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의 입법적 거부는 의회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 순간 해당 규칙(우리나라의 시행령에 해당)은 무효화된다. 반면 우리 국회법 개정안은 상임위원회가 소관 부처로 하여금 처리하고 보고하도록 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 조항은 소관 부처로 하여금 해당 시행령을 다시 검토하도록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만일에 개정된 국회법이 국회의 의결이 있으면 해당 시행령은 자동으로 무효화된다고 규정했더라면 그 조항은 위헌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시행령을 무효화하는 국회 의결의 성격을 입법적인 것으로 본다면 국회가 입법을 하는 경우에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법률안 거부권을 침해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추진은 악영향을 받게 되어서 국정이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위헌 논리는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대표기관이며 원래 입법기관인 국회를 국정을 마비시키는 집단으로 보고 있어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행령 제정을 대통령의 전적인 재량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 역시 큰 문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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