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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절반이 지나고 있다. 하는 것이 없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센터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대기업을 동원해서 만들어낸 창조경제센터가 우리 경제를 살릴 것으로 믿는 사람은 박 대통령 말고는 별로 없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꼭 했어야 할 시대적 과업인 공공분야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간 양상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후에 비등했던 공공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정책으로 받아내지 못했다. 경제민주화, 검찰개혁 등 중요한 공약을 파기한 박 대통령은 ‘예스맨’들을 전진 배치해서 권력 누수를 막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다.

실패한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내세우고 들어선 정부의 실력이 이 정도라면 정권 교체가 기정사실처럼 느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인데, 야당이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제는 야당”인 셈이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야당은 최소한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안철수 신당과 합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고 나서이다. 하지만 김한길-안철수 체제는 세월호 침몰 후 치러진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실패하고 무너졌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쳐서 들어선 문재인 체제는 당을 쇄신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지만 지난 재·보선에서 패배했을뿐더러 그 후폭풍을 수습하는 데도 실패했다.

새정치연합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자신들이 받았던 지지를 그대로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큰 문제다. 각종 여론조사는 전통적으로 야당을 지지해 왔던 호남 유권자들은 물론이고 20~30대가 더 이상 새정치연합을 지지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두 차례 선거 때 여당과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50대마저 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섰음을 생각하면 새정치연합은 외연을 확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세력마저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이미 새정치연합이 약간의 우클릭을 해서 외연을 확장하고 전직 대통령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문재인 대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런 수준의 해법으로 극복될 것 같지 않다. 문 대표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서 이제는 봉합이 사실상 어려워 보이니 상황은 심각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이룰 수 있는지는 현재로선 의문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작 발언을 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_경향DB



문 대표가 2012년에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당연히 자신을 지지하는 것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낙선한 정치인은 그런 오류에 빠지기 쉬운데, 그런 정서에 집착하면 다음 선거에 나와도 더 크게 패배하기 마련이다. 1967년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는 1963년 선거 때보다 더 큰 표 차이로 패배했고,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도 1997년 선거 때보다 더 큰 표 차이로 패배했다. 민주화운동 경력을 갖고 있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음을 생각하면 지금 같은 상태로 문 대표가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야권은 유권자들이 정권 교체에 손을 들어주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공적인 정권일지라도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감이 있다면 야당은 젊고 역동적인 리더를 내세워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와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이런 식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블레어와 클린턴은 보수 정당과 경쟁하면서도 진보임을 강조하지 않았다. 실패한 정권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권 심판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들이 ‘변화’를 가져올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영국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와 미국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그렇게 승리해서 장기간 집권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는 ‘신뢰할 수 있는 변화’를 내세우고 경선과 본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요즘 야권에선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퍼져가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불리한 데다 대중은 더 이상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해 관심을 잃었다고 절망하면서 새정치연합을 일본 민주당에 비유하기도 한다. 일본 민주당이 유권자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유를 보면 리더십 부족과 비현실적인 정책 등 지금 야당의 모습과 닮은 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문 대표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다.

호남의 정서 또한 만만치가 않아서 호남 자민련 같은 작은 신당의 출현은 상수(常數)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문 대표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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