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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소비가 줄면 소비절벽이라 하고, 고용이 줄면 고용절벽이라고 한다. 인구절벽이라는 말도 유행이다. 출산율이 2.1명 정도는 되어야 현재 인구 수준이 유지된다고 하는데, 현재 출산율은 1.2명이다. 문제는 문제다. 인구가 줄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이런 출산율로서는 ‘최적’ 규모로 인구가 줄어들다가 이내 ‘무인도’가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딱히 직접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소비를 늘리려면 정부가 빚내서 돈을 돌려볼 수 있고, 고용을 늘리려면 정부가 두 눈 질끈 감고 돈 융통해서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 출산은 그렇지 않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대통령이 1년 전에 저출산과 관련하여 “젊은이들 가슴에 사랑이 없어지고 삶에 쫓겨가는 일상이 반복될 것”이라며 보기 드문 ‘낭만주의적 걱정’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애써 이해하려 한다.

19세기 독일의 괴테가 청춘의 사랑과 고뇌를 노래할 때,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청춘의 사랑을 염려하는 사람이 있었다. 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토머스 맬서스였다. 그는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기 때문에 인구를 자발적으로 줄이든지 아니면 굶어 죽든지 하라고 거침없이 쏘아붙였다. 당시 팽배했던 사회경제적 낙관주의에 찬물을 끼얹었고, 경제학은 “암물한 학문”이라는 오명을 안게 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사실 그로서는 좀 억울하긴 하다. 토머스 칼라일이 “암울한 학문”이라고 한 것은 맬서스의 인구론 때문이 아니다. 칼라일은 노예가 당연히 자신보다 우월한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하기 때문에 강제적인 노예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당시 정치경제학을 한다는 경제학자들이 수요공급법칙을 거론하며 자유로운 거래를 주장하는 상황을 개탄했다. 경제학을 싸잡아 암울하다고 했고, 그런 경제학계에서도 지주의 보수적 이익에 봉사하는 자로 공격당했던 맬서스가 덤터기를 썼다. 또 있다. 가난한 자들의 굶주림과 아사, 그리고 인구 축소를 위한 전쟁 불가피론을 정당화했다는 비난이 난무했다. 그는 줄곧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무려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끊임없이 고치고 고쳤다. 파국적인 인구 팽창을 막기 위해 그가 주장한 것은 ‘도덕적 절제’였다. 특히 결혼 후 피임하는 방식도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만혼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는 책이란 무릇 출간되면 작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고 원문 대신 해설을 본다. 그래서 맬서스의 뜻을 이었다는 신맬서스주의자는 맬서스의 뜻에 반하여 강제피임을 거칠게 주장했다.

그가 아이 셋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뒤 그가 염려한 파국은 오지 않았다. 문제가 된 것은 오히려 인구 부족이었다. 1930년대에는 유럽의 국가들이 일제히 인구를 늘려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달랐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는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려면 군사적 팽창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인구 팽창이 필요불가결하다고 믿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전쟁이라고 보는 무솔리니는 당연히 “출산 전쟁”을 선포했다. 남자는 전쟁터로, 여자는 ‘출산터’로 향했다. 낙태는 국가적 범죄가 되었고, 성교육과 피임도 금지되었다. 다산의 엄마에게는 훈장이 주어졌고, 재정적 지원도 뒤따랐다. 아이 없는 부모에게는 벌금이 부여되고, 독신세도 도입되었다. 이혼도 금지되고, 여성들은 출산이라는 ‘국가적 대의’에 봉사하기 위해 집에 머무르도록 했다. 무솔리니의 출산 전쟁은 그의 수많은 다른 전쟁처럼 실패했다. 인구를 4000만명에서 6000만명으로 늘리려는 야심찬 계획이었건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결혼비율은 늘지 않았고, 출산율은 오히려 줄었다. 인구는 예전보다 줄었다.

같은 시기에 스웨덴도 같은 고민을 했다. 당장의 대규모 실업도 문제였고 인구도 줄어들 조짐이 보였다. 스웨덴은 전쟁이나 경쟁을 선언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해법을 찾는 연구를 앞세웠다. 뮈르달 부부가 연구를 맡았다. 한적한 산속 오두막에 자리 잡고, 남편은 경제와 통계 분석을 맡고 아내는 여성과 가족 정책을 분석했다. 그들의 결론도 별다를 게 없었다. 출산율을 늘려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 방법은 달랐고, 무엇보다도 출발점이 달랐다. 뮈르달 부부는 출산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의 문제, 더 나아가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동체의 문제라는 데서 해법을 모색했다. 따라서 부부가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그 선택을 존중하며, 아이를 원하는 경우에는 사회가 출산과 양육을 돕는 것이 최선의 출산장려정책이 된다. 아이의 미래를 돌보는 것이 출산장려의 선결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들이 직면한 교육, 영양, 의료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진 것이다.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미래를 키우는 일이지, 또 하나의 소외된 사회계층을 만드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뮈르달 부부는 포괄적인 사회정책을 제안했다. 부부가 모두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양육의 부담을 사회가 나누어 가지도록 하며, 교육·의료·주택 문제를 사회가 해결하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출산장려를 위해 제안된 정책은 국가가 대폭 수용하여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웨덴 사회복지체제의 근간을 만들었다. 그 결과, 스웨덴의 출산율은 서서히 증가하여 2.0을 거뜬히 넘어섰다. 뮈르달 부부도 행복했다. 남편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고, 아내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부부의 ‘깊은 산 오두막 연구’가 끝날 즈음에 첫째 딸이 태어났다.

한국의 풍경은 또 다르다. 대통령의 ‘낭만적인 걱정’이 쏟아지자, 정부는 신출귀몰한 아이디어를 쏟아내었다. 이름하여 ‘출산지도’다. 가임기 여성의 수를 지역별로 써넣은 출산지도를 전국 방방곡곡에 퍼트려서 지역 간 출산 ‘자율경쟁’을 고취하고자 했다고 한다. 국방과 납세의 의무처럼 출산이 국민의 신성한 의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필요한 것은 차분하고 치밀한 ‘오두막 연구’인데, 들려오는 것은 귀곡산장의 괴이한 소리뿐이다. 그 소리에 청춘의 타오르던 사랑도 사그라들까 두렵다.

이상헌 경제학 박사·<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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