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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언론매체에서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 소고기 1위 자리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등장하고 있다.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서 한국 내 수입이 전면 금지되었고, 이 자리를 호주산이 대체한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2008년 미국 소고기 전면 개방에 따른 촛불시민의 저항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의 반감이 줄었고, 저렴한 가격에 수입량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호주에서 최근 수년간 가뭄으로 인한 초지 상태의 악화로 소고기 공급량이 줄어 가격이 급등했고,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중동 국가들이 청정 호주산 소고기의 수입량을 늘리고 있어서 저렴한 호주산 소고기의 물량 확보가 힘들어진 점도 기여했다.
현재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체결돼 있는 소고기 수입 조건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세계동물보건기구(OIE) 규정을 무시하면서까지 강행해 타결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연령제한 없는 소고기와 일부 내장까지 허용한 것이다. 정부는 국제기준에 따라 미국과 재협상하기보다는 ‘미국 소고기에 대한 한국민의 신뢰가 확보될 때까지’라는 애매한 한시적 조건을 달고 사태를 마무리했다. 이명박 정부가 맺은 수입조건의 황당함과 국제적인 안전 먹거리 확보 조건은 주변국의 수입 타결 상황을 보면 잘 나타난다. 2010년 대만, 2011년 홍콩, 2013년 일본, 최근 들어 2016년 9월 중국 본토가 2008년 촛불시민들의 주장과 같이 30개월 미만 미국 소고기 수입으로 결정했으며, 호주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입 금지다.
지난 2008년 광우병 논란 이후 가까스로 수입이 재개된 미국산 소고기가 8년여 만에 검역량 기준으로 호주산을 밀어내고 수입 소고기 1위 자리에 올랐다. 사진은 2016년 10월 31일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판매 중인 미국산 소고기. 연합뉴스
이처럼 과학에 근거한 국제 통상기준은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졌지만, 주변국이 한국보다 엄격한 조건으로 미국과 타결한다면 언제라도 미국과 재협상하겠다던 대국민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당시 관련 공무원들이나 관변학자 및 이에 호응하며 일반인들을 선동했던 ‘조·중·동’이라고 하는 주류 언론사 어느 하나 지금까지 대국민사과나 참회가 없다.
미국 소고기가 국내 수입량 1위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20일 출범한 트럼프 정부의 반응이다. 그동안 미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미 간의 공식 수입조건을 내세우며 한국 정부의 한시적 수입기준의 철회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서 한시적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미국 소고기 수입을 반드시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소고기가 국내 수입 소고기의 1위가 된 상황은 촛불시민들의 노력에 의해 지금까지 안전한 먹거리 확보에 기여해 온 한시적 조건을 무력화시키는 셈이기에 보호무역을 내세우는 트럼프에게는 이명박 정권이 맺은 양국 간의 공식 소고기 수입조건으로의 복귀를 내세울 충분한 명분을 준 셈이다. 이는 자국민 먹거리 안전성을 포기한 이명박 정부의 실책에 대한 결과를 국민들이 직접 떠안아야 함을 의미한다.
주변국과의 형평성 논리로 대응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미국 소고기 수입이 또다시 뜨거운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자국민의 식품 안전을 위한다면 한국 정부가 결코 수용해서는 안된다. 국정 지도자의 잘못을 국민이 떠안게 되는 현실은 정권을 떠나 변하지 않고, 이것이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이 끊이지 않는 슬픈 이유다.
우희종 |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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