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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보내는 한철이다. 한 달여의 방학 동안 급식이 없으니 밥을 해대느라 괴로운 엄마들끼리 이를 두고 ‘세끼 지옥’이라 부른다. 잘 해먹이든 아니든 자녀의 끼니를 책임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인 나는 개학을 기다리고 있다.

이즈음 인터넷 포털이나 소셜미디어상에 방학 중 결식아동에 대한 후원을 호소하는 구호단체의 광고도 많이 볼 수 있다. 아이들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대역을 쓰면서 그 외롭고 쓸쓸한 방학의 풍경을 비춘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거의 비슷한 콘셉트다. 바뀌는 것은 반팔과 긴팔 옷일 뿐. 그 삶을 살지 않으면서 그 가난을 재현한다는 것이 끔찍하다. 가난을 방치하는 사회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일이 사회학의 일이기는 하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지갑을 기꺼이 여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세상은 아직까지 안 망하고 버티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식아동의 연령 범주는 18세 미만의 고등학생 나이의 청소년까지 포함되지만 ‘아동’이란 말에 갇혀 대개 어린이만을 상상한다. 그래야 마음이 더 저릿해져 지갑을 열 테니까. 결식아동·청소년은 2015년 보건복지부 공식 통계로는 35만여명. 하지만 시민단체나 각종 통계를 추산해보면 상시 결식아동은 68만명. 그중에서도 방학 중 결식아동은 41만명 정도다. 방학 중 외려 결식아동이 줄어드는 이유는 부모가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서 방학 중 결식지원을 신청해야 하지만, 방학도 짧은 데다 고등학생들은 그야말로 ‘쪽팔려서’ 그냥 굶기로 결심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한국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굶주림에 방치하는 비정한 사회는 아니다. 방학 전 공문을 대대적으로 띄워 결식아동은 물론 급박한 가정 상황으로 결식 상태가 예상되는 경우에도 지원한다. 사각지대를 적극 ‘발굴’하라는 지시도 떨어진다. 문제는 방학 중에 결식을 메우는 방식이다.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급식이 이루어지거나 도시락을 배달해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G드림카드나 꿈나무카드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결식지원카드를 제공한다.        

이 카드로 지정된 장소에 가서 회당 3500원에서 4000원 정도의 음식을 구매할 수 있다. 액수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지자체마다 형편이 달라서이다. 분식집이나 중국요리집 같은 곳도 있지만 동네 곳곳에 있는 편의점이 가장 많이 지정돼 있다. 지원 카드로 삼각김밥과 컵라면, 음료수 등 절묘하게 가격을 맞춰서 한 끼를 넘긴다.        

점심엔 참치마요 삼각김밥, 저녁엔 불닭 삼각김밥, 이런 식이다. 일회 사용액수를 제한해 놓은 것은 극소수 몰지각한(?) 아동의 ‘급식카드깡’ 사례가 있었고, 부모들이 이걸로 두 끼 분량을 한꺼번에 모아서 애먼 것을 구입할 우려가 있어서다. 이 지원비는 엄연히 힘없는 아동만을 위해 존재해야 하므로!

다시 인간의 식사를 생각한다.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신체와 영혼의 칼로리를 채우는 것. 그것이 엄연한 식사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은 4000원 안짝으로 오로지 열량을 좇느라 허기진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편의점에나 가라하고, 청년이 되어서는 돈이 모자라 스스로 편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아동인구 감소로 아동은 줄어든다는데 결식아동의 숫자는 줄지 않는다. 긴 불황 탓이다. 방학이 끝나야 그나마 숟가락 젓가락 들고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 있을 텐데. 소년의 밥상이 차다. 진짜 세끼 지옥은 바로 여기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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