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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죽었다. 위장이 뒤틀리는 심사를 다독거리며 기록을 남겨 잊지 않기로 한다. 뭐든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세상에는 ‘기억’이 곧 저항이고 변화의 시작이다.

삼십대 중반의 한 사내는 기중기로 향하는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 높이는 32m. 이른 아침 세찬 겨울바람이 들이치는 그곳의 ‘안전난간’에 기대어 일터로 향하다가 수직 추락했다. 얼마 전 같은 공장, 삼십대 후반의 사내 하나가 이미 죽었다.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가 상반신이 끼었다. 살려 달라고, 살려 달라고 했으나, 구조대는 50분이 지나서 나타났다. 딱 일주일 만에 똑같은 공장에서 두 명의 삼십대 사내가 죽었다.

각박한 시대라 자조적인 말도 있을 터이다. 어차피 매일 6명 이상이, 매년 2000명 이상이 일터에서 비명횡사한다. 우발적 사고를 피하긴 힘들고, 박복한 팔자를 어이할 것이냐고 말이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서 펜대 잡는 일을 해라. 어릴 적 수없이 들었던 얘기고, 지금도 어디선가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하는 말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러나 혹 거기가 어디냐고 궁금해할 당신, 기억하시는가. 현대제철 당진공장. 지난 5년 동안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언론에 무수히 오르내렸던 공장이다. 2013년에는 하청업체 노동자 다섯 명이 가스 질식사고로 숨졌다. 그해, 모두 10명이 일터에서 죽어 나갔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살펴보니, 이 공장은 산업재해 발생 보고도 하지 않았다. 2011~2013년 사이에 최소한 20번 이상 위반했다. ‘현대’라는 기업 이름에 지레 휘둘리던 정부도 뜨끔하여 특별근로감독을 했다. 노동단체는 현대제철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했다.

특별근로감독이 실제로 현장에서 얼마나 ‘특별’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특별하지 않았고 결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괴했다. 특별근로감독의 결과로 현대제철에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액수가 ‘무려’ 1억9000만원에 ‘육박’했는데, 그나마 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여 7000만원을 깎아주었다. 정부와 현대제철이 ‘할인 혜택’의 규모를 두고 고민했던 그해에도 두 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2016년. 변한 것은 없다.

산업안전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백도명 서울대 교수가 지적한 바 있다.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으로’ 높은 산업재해 사망률도 그렇지만, “심각한 점은 산재의 대부분이 사고가 났던 곳에서 또다시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인재라는 뜻이다. 살릴 수 있는, 살려야 할 사람들이 일하다가 쓰러져 가는 일터. 세월호는 일터에서 매일 침몰하고 있다.

풍경은 을씨년스럽고도 친숙하다. 지난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고를 당한 곳은 “통로가 좁아 기계에 몸이 끼이는 등의 안전사고 위험이 커 노조가 수차례 현장 개선을 요구한 곳”이라 한다. 그리고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엄격한 조사와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공장 관계자는 업무과실치사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삼엄한 분위기에서도 다른 노동자가 일주일 후에 기중기에서 추락했다. “여기 살려 달라”고 창문 두드리고 소리쳐도 보아주질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목소리를 높이면, 기업을 망치려는 것이냐는 비아냥이 돌아온다. 훈계는 정부가 앞서서 하고, 기업은 뒤에 숨는다.

부패의 그림자도 스멀거린다. 2년 전 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노동자 한 명이 숨졌다. 이때 산업안전감독관은 기업에 ‘노동자 과실’로 부각시켜 주는 대가로 2400만원을 받았다. 공사 전체 수주액이 3000만원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처음에 1400만원을 받고 그 이후로도 휴가비 및 떡값을 챙겼다. 그 대가로 현장점검을 면제해 주었다. 이미 죽은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부검의의 심정으로 사건을 살펴야 할 자가 노동자의 죽음을 ‘삥 뜯기’의 기회로 삼았다. 근로감독의 근본을 흔드는 사건이고 관련 부처가 크게 책임지고 분골쇄신해야 할 일이건만, 진도 앞바다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진전도 있긴 하다. 산업재해 빈도가 줄었다. 작년부터는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산재사망 숫자가 2000명 이하로 뚝 떨어졌다. 작년에는 1800명 남짓이다. 200명 이상이 갑작스레 줄어들었다. 하지만 반응은 신통찮다. 통계적 ‘착시’ 현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산재 통계 방식을 바꾸었다. 예전에는 근로복지공단의 방식에 따라서 사업장 외 교통사고, 체육행사, 폭력행위 등 업무와 관련 있는 모든 사고를 포함했지만, 새 방식은 이를 모두 제외한다. 덕분에 2014년 기준으로 산재사망자가 2134명이던 것이 1850명으로 줄었다. 죽어 나가는 노동자의 숫자는 변함없지만, ‘산재사망’이라고 인정해 주며 스티커 발부하는 방식만 변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지침과는 딱히 맞아떨어지지 않는 방식이다. 정부의 설명은 이랬다. “실제 예방할 수 있는 산재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맞는 말이다. 정부는 정책 수립과 집행을 통해 막을 수 있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되돌려 묻는다. 이제껏 ‘예방할 수 있는’ 죽음을 막았는가.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줄초상은 ‘예방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던가. 근로감독이 ‘침몰’하고 있는지부터 살피는 것이 도리다. 생명이 걸린 일인 만큼 흔들림없이 엄중해야 한다.

최근 오해 살 일도 생겼다. 정부는 참여연대에 처음으로 근로감독을 한다고 한다. 23년 만이다. 시민단체도 의당 근로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시점이 논란거리다. 촛불집회 주도 단체인지 몰랐고,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다고 했다. 근로감독의 ‘정치화’를 걱정하는 소리마저 나오는데, 그저 오비이락이길 바랄 뿐이다.

인간은 삶이다. 일단 살아야 한다. 그래서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이고, 노동정책의 출발점은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노동을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로 헌법에 못 박아 두고서는, 일하다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니다. 그랬던 내 나라의 모습, 잊지 않고 기록해 두겠다. 그리고 부탁이다. 많이 바라지는 않는다. 더 이상 죽이지는 마라.

이상헌 경제학 박사·‘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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