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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의 화가’라고 하면, 아마 많은 분이 폴 고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정작 원시림의 열대 식물에 푹 빠져 지낸 사람은 앙리 루소라는 화가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그는 프랑스 출신인데, 스스로 깨우치고 궁리한 덕분에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초기 작품에 조금씩 등장하던 나무나 꽃들이 말년의 작품에는 아예 열대식물로 가득 찬 우거진 원시의 숲을 이룬다. 그렇다고 그가 남미나 아프리카의 열대림을 탐험하거나 여행을 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평생 프랑스는 고사하고 파리를 벗어나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거친 바다와 열대 정글을 꿈꾸는 화가였으니, 그야말로 ‘방구석 유람’을 즐긴 진정한 와유인(臥遊人)인 셈이다.

그의 영감의 원천은 식물원과 박물관이었다.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럽의 제국주의 팽창은 전 세계가 그들의 시장이었다. 그 결과, 각지에서 채집한 희귀식물들은 식물원의 역사를 새로 쓰게 했고 유럽의 정원과 자연풍경을 바꿔 놓았다. 파리 자연사박물관과 식물원의 단골 관람객이었던 루소는 틈나는 대로 박제된 동물과 열대 식물을 관찰하고 스케치하였다. 당시의 파리 식물원을 찍은 사진엽서를 보면 루소의 정글 풍경 그림과 매우 흡사하다. ‘식물원의 유리 온실에 들어서서 열대식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던 그에게 파리의 식물원과 박물관은 놀이터이자 작품 소재의 산실이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식물은 대개 그 이름을 특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에게는 식물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표범이나 사자의 표정에서 우리 민화에 나오는 까치 호랑이가 연상된다. 장면은 잔인하지만, 표정은 어리숙하여 그의 순수한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치열한 생존경쟁 앞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순진한 태도를 보였던 그의 심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의 원시림 풍경화를 보고 있으면, 곧 무엇인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진녹색 열대 식물의 잎사귀 사이사이에는 이름 모를 동물의 눈동자가 숨어 있다. 마치 파리의 정글 속에서 꿈을 꾸는 몽상가 루소의 눈동자처럼 말이다.

앙리 루소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재현한 듯한 작품을 경기도 용인에서 만날 수 있으니, 바로 백남준 아트센터의 <TV정원>이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연재 | 이선의 인물과 식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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