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산산산 나무나무나무.” 오래전, 전국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친숙한 문구이다. 그 덕분에 잘사는 우리나라에 걸맞은 푸른 국토를, 그것도 국민들의 손으로 심어 가꾼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나무를 심는 일이 이젠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목일이 올해도 다가오고 있지만, 나무 한 그루 심지 않고 지나간다고 마음 한쪽에 불편함을 담아 두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각 기관들도 식목일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열심히 챙기지도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나무심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무심기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는 “이젠 나무를 다 심어 더 이상 심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은 나무들 가운데 왜 쓸모없는 것들이 많은가”라는 원망들도 들려온다.
나무가 있어야 하는 공간은 저 멀리 떨어져 있고 경사진 오지의 산자락뿐 아니라, 도시의 빈 공간, 마을의 어귀나 뒷동산, 가로변 혹은 경사지, 강가, 집마당 등등 모든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색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가득 찬 도심이라면 나무는 더욱 절실하다. 나무 한 그루 뿌리박을 공간이 없다면 아주 커다란 용기에 담아서라도 곁에 나무를 심어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나무가 많은 이들의 가슴은 물론 마음의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수목원 광릉숲에는 수백년간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고 보존돼 생물다양성이 높은 천연림(위 사진)과 1927년 심은 전나무들이 자라는 인공림(아래)이 공존하고 있다. 국립수목원 양형호
모든 숲을 그대로 두어야만 잘 보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도 오해가 있다. 부러 심은 나무들은 잘 가꾸어야 한다. 나무들을 심을 때 처음엔 매우 조밀하게 심는다. 소나무와 전나무 같은 침엽수의 경우는 1㏊(100m×100m)에 3000그루 정도 심는다. 나무들이 자라면서 서로 경쟁을 통해 곧은 나무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나무들이 자라면서 점차적으로 솎아내기를 해야 굵고 튼튼한 나무로 커나간다. 독일의 흑림처럼 나무 한 그루의 가치가 벤츠 자동차 1대와 맞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잘 가꾼 숲의 경우 가장 마지막엔 1㏊에 100그루 정도가 남는다. 이렇게 단계별 과정을 거치면서 숲 안에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으로 볕이 들어와 하층의 여러 작은나무와 풀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여러가지 생물들의 서식이 가능해지면서 말 그대로 생물다양성이 높은 건강한 숲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을 둘러싼 광릉숲의 천연림처럼 천혜의 자연림들은 숲에서 스스로 이루어지는 자연의 방법을 살펴보며 온전하게 보존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맞다.
얼마 전 목재산업을 하시는 분으로부터 “산에 나무를 심는 일은 물론 산에서 생산된 나무를 쓰는 일도 애국이라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기후변화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탄소를 산림의 나무가 흡수하여 고정하므로 목재 활용을 활발히 하는 것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되며, 나무를 쓰는 산업이 하는 일에 대한 마음 한쪽의 불편함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산림청에는 나무를 심고, 식생을 복구하고, 숲을 경영하고, 바이오에너지나 목재를 이용하면서 확보된 산림탄소흡수량을 정부가 인증해주는 제도도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기후변화라는 지구 차원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해법의 하나는 지속적으로 나무를 심고, 나무가 활발하게 생명활동을 하도록 가꾸고, 생장이 주춤해진 나무들을 사용하고 다시 심기를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푸른 강산을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우리는 아쉽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림면적이 감소한 두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 산에 소나무나 유실수처럼 돈이 되는 좋은 나무들은 없고 쓸모없는 나무만 있다는 불평도 나무 입장에서 할 말이 많다. 지금은 우리 땅이 우거지고 비옥해져 무엇이든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바탕이 되었지만 흙이 줄줄 흘러내리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척박한 지역에 살아남을 수 있는 나무는 리기다소나무, 땅속의 질소를 고정해주는 콩과식물 아까시나무, 빨리 자라는 속성수 은사시나무 등이었다. 이런 나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초록 숲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도 그 나무들을 심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엇이든 가능한 바탕이 되어 있으니, 지역마다 특색있고 풍토에 맞는 저마다의 숲으로 만들어 가야 하고 진짜 나무심기는 지금부터라는 이야기이다. 간혹 “산이 있는데 무슨 나무 심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무와 숲의 기능과 역할이 참으로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편백나무는 목재로서 가치가 높아 심었는데, 지금은 치유의 숲으로도 널리 활용한다. 울진 금강소나무 숲의 나무들은 문화재를 건축하는 데 쓰인다. 인제의 자작나무 숲은 사계절 사람들이 찾아가는 산림관광의 명소가 되어 있다.
식목일이 다가온다. 봄이 일찍 오는데 왜 식목일이 여전히 4월5일이냐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나무심기에 적절한 시기는 지역마다 다 다르다. 남부지방에서 이미 첫 식목행사를 시작했다. 어디든 어떤 나무이든, 지구의 문제를 위해서든, 내 삶의 행복을 위해서든 이번 식목일에는 모두가 나무 한 그루 심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실천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이유미 | 국립수목원장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론]‘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효과 거두려면 (0) | 2017.03.22 |
---|---|
[기고]인권위원은 ‘인권침해 세탁’의 자리인가? (0) | 2017.03.22 |
[속담말ㅆ·미]냉수 한 사발 하실래예? (0) | 2017.03.21 |
[산책자]사산되는 책들 (0) | 2017.03.20 |
[정동칼럼]‘2기 세월호특조위’ 시급하다 (0) | 2017.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