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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을 시도할 것이라는 속보를 본 순간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양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다시 접했다. 기상 여건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머지않아 세월호 인양이 시도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부디 인양에 성공하기를. 최대한 온전하게 세월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꽃 같은 아이들을 태운 배가 무참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사건은 온 국민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상처가 너무 컸던 탓인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세월호를 입 밖에 꺼내기를 주저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광화문광장을 지날 때면, 불편한 마음에 발걸음도 빨라졌다. 작년에 선거를 준비하던 누군가가 “이제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국민들이 싫어한다”고 말할 때, 나조차도 그 앞에서 아니라고 말하질 못했었다. 그렇게 세월호가 사람들의 눈과 귀에서 멀어지는 동안,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했고, 온갖 험한 일을 감수해야만 했다.

세월호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를 바라는 지배세력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시작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비록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헌법재판소는 세월호를 탄핵심판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국민이 권력자를 몰아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월호였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촛불도, 탄핵도 세월호가 시작이었다.

다음달 세월호 인양작업에 투입되는 재킹바지선 2척이 17일 진도 서망항 앞바다에 대기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세월호 인양으로 진상이 저절로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의 눈물이 저절로 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제 진상 규명과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시작된 것일 뿐이다. 진상 규명의 주체가 되어야 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박근혜 정부에 의해서 강제 해산된 상태다. 세월호특조위가 다시 설치되지 않는다면, 해양수산부가 진상 규명의 역할을 맡게 된다.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가 진상 규명의 주체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2기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도록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도 시급하다. 진상 규명은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의 선결조건이다. 일각의 패륜적인 말과 행동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정한 법적 장치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귀를 씻고 눈을 가리고 싶은 패륜적인 말과 행동은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을 향한 테러였다.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윤리조차 내팽개치는 이들에게는 용서 없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멀리는 5·18 희생자에서부터 최근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청년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희생을 조롱하는 말과 행동을 더 이상 철없는 행동이나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용인해서는 안된다.

세월호 참사 시작부터 진상 규명 마지막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국가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누가 어떤 말과 행동을 했었는지, 세월호는 그만 잊고 경제를 살리자고 말했던 사회 지도층은 누구였는지, 보상 때문에 가족들이 저런다고 보도한 언론은 어디였는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가족들의 바람은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윤을 위해 안전을 뒤로 미루는 관행과 이를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고, 책임 있는 국가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족들이 원하는 궁극적인 명예 회복이고 상처 치유이다. 세월호가 촛불과 탄핵의 출발이었다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가족의 상처 치유, 안전사회를 위한 국가체계의 확립은 촛불과 탄핵의 마침표이다.

작년에 아이들과 팀 버튼 감독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봤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등장한다. 세상은 그 아이들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미스 페레그린의 돌봄을 받으면서 영원히 살고 있다. 영화 막바지에 미스 페레그린이 악당에게 잡혀간다. 공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여자 아이가 바닷속에 수십년째 침몰해 있던 배에 잠수해서 들어간다. 길게 숨을 내뿜자, 공기가 가득 차면서 거대한 여객선이 순식간에 물 위로 떠오른다. 아이들은 그 배를 타고 미스 페레그린을 구하러 나선다.

꽃 같은 아이들아, 정말 염치없는 부탁 하나만 들어주렴. 어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혹여 세월호 인양이 늦춰진다면, 너희가 도와주렴. 너희의 숨을 불어넣어 세월호를 세상으로 띄워주렴. 그리고 약속하마. 더 이상 억울한 눈물이 없도록 우리 어른들이 정신 똑똑히 챙기겠다고. 너희를 잊지 않겠다고.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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