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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광화문 촛불집회는 거대한 민주주의 야시장이다. 지난 석 달 동안 야시장 풍경은 분명 달라졌다. 탄핵이라는 절대 목표가 있던 때는 절박하게 뭉쳤다. 지금은 저마다 마음속 광장에서 다양한 담론의 분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마치 묵은 낙엽 위에 또 낙엽이 쌓여 숲은 잊혀져가지만 어느새 수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처럼.

광화문 한 사케집은 붐볐다. 우리 일행은 작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파전과 어묵탕을 주문했다. 750㎖ 사케 반병은 차게, 또 반병은 따뜻하게 데웠다. 어묵탕 국물이 말갛게 끓어오를 때쯤 우린 광장 숲더미에서 골라온 나무를 꺼내보자고 했다.

가장 최근에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다. 두 사람은 많이 다르다.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이 시장은 “물이 반밖에 없는데 참아야 하나”라면, 안 지사는 “아직 물이 절반은 있으니 여기서 시작해보자”는 식이다. 이 시장은 사적 고난을 통해, 안 지사는 공적 고난을 통해 성장했다. 촛불정신에서 봐도 이 시장은 촛불의 변혁에, 안 지사는 촛불의 평화에 가깝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23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열린 대선 출마선언을 하며 가족들과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그런데도 왜 이 두 사람을 같이 거론하게 될까. 누군가 “시대 교체, 50대 기수(연합)론이 강렬해서”라고 했다. 50대는 한국 사회 주축이면서도 부모 부양에 자식 양육, 소득 불안정까지 가장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세대다. 세대별 유권자 지형 변화에서도 대선 캐스팅보터가 40대에서 50대로 이동했다는 ‘세대 이동’ 지표가 뚜렷하다. 결국 이들의 대표가 이들의 고통을 해소해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논리다. 탄핵심판 이후 심판 프레임보다 미래 프레임이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시대 교체, 50대 기수론을 받치는 힘이다.

다른 누군가는 “정당 정치 발전”을 이유로 들었다. 쇼핑하듯 정당을 고르는 후보, 때만 되면 텐트 치기 바쁜 후보들 틈에서 이 두 사람은 ‘고향 까치’ 같다고 했다. 그런 느낌이긴 하다. 특히 안 지사는 구태와 동의어였던 ‘직업 정치’를 바꿔 놓았다. 당의 명령에 따라 불출마했고, ‘폐족’을 자처하며 성찰했다. 이 시장은 야권 촛불공동경선을 주장하면서도 민주당 대선 경선 룰에 승복했다. 정당을 당원들의 민주적인 의사 결집체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케 한 병을 더 시켰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됐다. ‘2등 경쟁’이 화두가 됐다. ‘문재인 대세론’을 기정사실화하고 두 사람이 2등 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 정책만 보면 이 시장은 문재인 전 대표 왼쪽에, 안 지사는 문 전 대표 오른쪽에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장은 문 전 대표의 진보정체성 강화를,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의 외연 확대를 책임진 셈이다. 촛불 정국 최전선에 섰던 이 시장 덕에 색깔론 타깃이 될 뻔했던 문 전 대표는 1위 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이 시장은 문 전 대표와의 ‘사이다·고구마’ 공방도 확대하지 않았다. 안 지사는 ‘비문 우산론’ ‘개헌’ 등 치열하게 문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막았다.

은메달을 따려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는 없다. 두 사람도 문 전 대표의 페이스메이커가 아님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곳곳에서 2등 경쟁은 합리적 의심으로 다가온다. 혹시 문재인 이후를 차지하려는, 그래서 지금은 밋밋한 경선의 흥행 코드면 된다는….

그냥 2등 경쟁은 김빠진다. 기왕 할 거면 색깔 분명한 젊은 주자들이 더 치열하게 2등 싸움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권교체에 가려진 시대교체, 정당정치 발전이라는 ‘이재명·안희정’ 출마 의미가 살수 있다. 레닌은 “혁명은 하층계급이 과거 방식으로 살기를 원치 않는 것만으론 어렵다. 상층계급도 과거 방식으로 통치할 수 없는 상태여야 한다”고 했다. 촛불민심이 밀어올린 ‘아래’의 변화와 대표 주권자 후보들이 만드는 ‘위’의 변화가 만나야 새 시대를 열 수 있다.

마지막 사케 한 병은 다 비우지 못했다. 2등 경쟁이 만드는 변화를 우린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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