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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자기야 뭐해?’

카카오톡으로 물었다. 질문 앞 ‘1’이 지워지지 않는다. 10분쯤 지나니 ‘1’이 사라졌다. 읽었다는 얘기다. 답이 없다. 10분이 더 지났다.

‘피곤.’

‘화가 난 것은 아니지?’

20분 더 지나 답이 왔다.

‘그냥 피곤.’

이런 대화를 연인과 ‘카톡’으로 주고받았다 치자. 그(혹은 그녀)는 정말 피곤한 것뿐일까. 눈치가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이쯤에서 알아차려야 한다. ‘피곤하다’는 ‘너랑 대화하기 싫어’의 다른 말일 수 있다. 한창 좋아할 때라면 빛의 속도로 답변이 왔을 것이다. 겉으로 “별일 아니다”라고 하는데도 카톡의 문자만으로도 상대의 심기를 알아차리기가 어렵지 않다.

지독히 눈치가 없는 남자의 최후는 20년 전 김건모가 ‘잘못된 만남’에서 경고했다. 내 친구를 여자친구에게 소개시켜줬더니 둘이 눈이 맞아서 결국 나를 차버렸다는 것이 스토리 라인이다. 여자친구와 ‘파투’가 난 것은 ‘심하게 다툰 그날 이후’였지만 징조는 있었다. 여자친구는 언제부턴가 나보다 내 친구에게 더 관심을 가졌고, 나 역시 알 수 없는 예감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애써 무시했다. ‘너를 믿었던 만큼 내 친구도 믿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사랑과 우정 모두 잃었다. 김건모는 훗날 이 노래가 자전적이라고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를 결정한 이후,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 정부가 딱 이 짝이다. 한류 드라마의 중국 방영이 중단됐고, 방한 관광객이 줄었다. 수출된 화장품은 대거 반송됐다. 국내 대기업의 전기차 배터리는 현지에서 사용 거부당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공연도 불발됐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잇단 세무조사와 소방점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뿔테 안경을 썼다고 비자도 안 내준다. 이 모든 변화가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발표 이후 벌어졌다.

정부는 “중국이 공식적으로 사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며 애써 상황을 부인한다. 연인이 토라졌다고 말을 안 하니 토라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눈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그러면서 하는 말이 “화장품은 중국 통관기준에 못 맞췄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국내 기업 탓으로 돌린다. “유커 축소는 중국의 저가관광 축소 조치에 따른 것”이라며 중국 내부 정책 변화를 탓하기도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세계적인 소프라노 공연을 불허하면 중국만 손해”라는 말도 나왔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다.

사드 배치 결정이 난제였다면 정부는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물었어야 한다. 사드 배치를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우리가 얻거나 잃게 될 것들을 충분히 검토한 뒤 결정을 내렸어도 늦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랬다면 중국의 무역제재도 지금만큼 당황스럽거나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사드 배치를 결정할 때 그 정도의 위험은 함께 감내하기로 이미 국민적 합의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전히 아니라고 하는데 중국의 죄기는 더 심해진다. 그러니 대기업도, 서울 명동 상인들도 불안한 거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중국의 무역제재가 존재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런 뒤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게 옳다. 대미 안보외교를 펴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 똑같은데 중국이 유독 한국만 치는 것은 한국 정부의 두루뭉술한 대처에도 원인이 있다.

그래도 답을 모르겠거든 정부는 ‘잘못된 만남’을 다시 들어보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울어보지만 또 다른 친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해주는 말은 ‘잊어버리라’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을 중국이 정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어쩌겠는가. 국민에게 묻지 않고 결정한 사드 배치는 유감스럽지만, 중국의 보복에 이런 식으로 계속 끌려갈 수도 없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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