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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실시되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훗날 어떻게 기억될까? 4년 전 또는 8년 전 총선처럼 이번 선거 결과도 다음 총선 즈음에는 우리 뇌리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대신 이번 선거는 ‘비례 꼼수 총선’ 또는 ‘코로나 총선’으로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례 꼼수’의 구구한 내용은 새삼 되풀이할 필요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한다고 나서더니 이내 본전 생각에 50%만 득표율과 연계시키는 준연동제로 돌아섰다. 그것도 모자라 연동 비례대표 의석을 30석으로 제한했다. 뒤이어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초유의 비례·위성 정당을 만든 뒤부터는 아예 고삐가 풀렸다. 꼼수는 또 다른 꼼수를 낳았고, 편법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이 과정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누명을 쓴 것이다. 비례성을 확충한다는 당초 취지는 사라지고 선거판을 어지럽힌 천하의 몹쓸 제도로 눈총받고 있다. 비례대표제 논란을 부른 것은 정치인들인데 죄는 제도에 뒤집어씌웠다. 특히 미래통합당은 이 제도가 다소 복잡하고 생소한 것을 빌미 삼아 잘못된 정보를 던지며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는 엊그제에도 “선거가 끝나면 이번 혼란을 일으킨 비례대표제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자신들이 비례제를 유린한 것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또다시 비례제를 희생양 삼으려는 것이다. 그나마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제마저 없었던 일로 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선거법 개정은 ‘공중부양’ ‘축지법’을 쓴다는 허경영씨 당에 국고보조금 8억4000만원을 한입에 털어넣어준 그런 허망한 규정을 고치는 것이어야 한다.

연동형 비례제는 통합당의 주장처럼 대통령제와는 맞지 않느니 또는 한국에만 있는 희한한 제도니 하는 요설로 치부될 게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1개국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지역구 없이 전체를 비례대표로만 뽑는 나라가 25개국, 우리처럼 지역구와 비례제를 절충하는 나라가 6개국이다. 각 정당이 득표한 만큼 의석을 가져가는 것, 즉 비례성을 강화하는 일은 세계적인 흐름이자 대세이다. 이는 또한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도입을 제안·권고한 제도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4년 전 총선에서 득표율 25.5%를 기록한 민주당이 전체 의석의 41%를, 33.5%를 얻은 자유한국당이 40.7%를 가져간 것과 같은 불합리한 일은 시정되어야 한다. 표를 얻은 만큼만 목소리를 내고 힘을 갖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26.7%와 7.2%를 득표하고도 의석수는 12.7%, 2.0%밖에 얻지 못한 모순도 해결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소선거제 이점을 이용해 계속 힘을 가지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사회의 다양한 주장을 국가 의사 결정에 반영하고, 작은 소리도 외면하지 말자는 취지의 제도가 뒤로 밀려서는 안된다. 그것에 반대하는 주장이야말로 반문명적이다. 국민총화·일사불란의 시대 군소정당을 그저 혼란의 대명사로 간주하던 발상과 다름없다. 맘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차선 또는 차악을 내 손으로 직접 뽑아 여의도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도 재고할 때가 되었다. 한국처럼 좁은 지역에서 반드시 지역구 대표를 뽑는 것이 민주주의 구현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거대 양당 지지자들의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일부 빠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정당 투표에 고민하는 유권자가 많다는 뜻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두 장 있다. 한 장으로는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으면 된다. 그러나 나머지 한 장 비례표는 반드시 비례대표제의 정신에 부합하게 행사해야 한다. 오로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투표할 필요가 있다. 꼼수와 편법으로 비례대표제 취지를 훼손한 당에 비례표를 던지는 행위는 이율배반이다. 이런 행태에 눈을 감는다면 꼼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향후 선거법 개정 논의를 위해서라도 비례제 훼손 행위를 심판해야 한다. 과거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처음 원내에 진출했을 때 국회가 달라진 풍경을 기억한다. 메기 한 마리가 미꾸라지들을 긴장시켜 생기를 유지하게 하듯 참신한 소수의 목소리가 여의도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고 싶다. 혹여 거대 정당들이 외면하는 기후변화나 차별금지에 제대로 대응하는 정책이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오는 15일, 그 일념과 기대를 갖고 나는 투표장에 들어설 것이다.

<이중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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