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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여름부터 넉 달에 걸쳐 집수리를 하고 있다. 사사건건 까탈을 부리는 나와 업자의 게으름이 한데 뭉쳐 더디고 또 더디다. 지금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지만 문제는 책방이다. 그동안 책을 작은 도서관에 기부도 하고 후배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작은방 하나가 책이다. 그 방을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지만 정리를 해야 할 일이기에 그동안 뒤죽박죽이 된 책방의 문을 닫지 않고 지냈다. 자꾸 봐야만 치울 것 같아서이다.

이제 겨우 짬이 나서 어떻게 정리를 할까 가늠하며 책을 들춰보다가 달갑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샘터’라는 잡지의 휴간 소식이다. 12월호를 발간하고 당분간 쉬겠다지만 휴간이라는 것이 곧 폐간이라는 사실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짐작할 것이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책방에 들어가 ‘샘터’부터 찾았다. 이곳저곳에 박혀 있는 책을 솎아 놓고 보니 114권 중 40권은 내 원고가 실린 것이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후에도 드문드문 원고를 썼지만 연재를 한 것은 2001년 1월부터 2004년 4월까지 3년4개월이었다.

‘샘터’는 워낙 오랜 기간 연재를 한 필자들이 많아서 그 정도로는 샘터 필자였다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그래도 그날은 책 더미 한쪽에 눌러 앉아 지난호 40권을 들춰보다가 하루가 저물었다. 아무리 ‘샘터’라는 잡지가 얇고 판형이 작다고 하지만 흘러간 세월의 더께와 함께 뒤적이다보니 싱숭생숭한 하루가 모자랐다. 연재를 할 당시 그곳에서 단행본도 한 권 출간이 되었고 매달 독자들과 함께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는 행사도 진행하였으니 그 작고 얇은 잡지와의 인연이 결코 얕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잡지의 중요한 직책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연재조차 그만두고 떠났으니 지금에 와서 듣는 소식이 더욱 안타깝다.

그날 밤에는 책상 앞에 앉아 관련 기사들을 찾아봤다. 모두 입을 모아서 50년이나 된 잡지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종이잡지의 쇠퇴에 대한 상념을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떠나는 것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 안간힘을 쓰는 것과도 같았다. 글의 대개가 어슷비슷한 것을 보면 보도자료에 충실한 추도사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잡지와 관련한 일을 해 오고 있는 나로서는 읽기가 몹시 불편했다. 시대가 달라져 더 이상 종이잡지가 팔리지 않아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서 문을 닫는다는 것은 바꿔서 생각해 보면 경영 실패라는 말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언론에 실린 글들을 냉정하게 되짚어보니 잡지사의 잘못은 없다. 오히려 잡지사가 문을 닫는 까닭이 종이로 된 잡지를 읽지 않는 시대의 독자들 때문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샘터가 하나뿐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갑자기 마을에 우물 하나가 더 생겼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구는 새로운 우물을 찾을 것이고 다른 누구는 계속 다니던 샘터를 고집할 것이다. 1997년에 시작된 외환위기를 겪을 무렵 우리 사회에 색다른 생각을 가진 이가 그동안 보지 못한 우물 하나를 팠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 우물을 찾아갔다. 기존 샘에서 솟아나는 물보다 신선했던 것이다. 소문은 사람들을 더욱 끌어들였고 그 우물은 발 디딜 틈 없이 미어터졌다. 그렇다고 전체 물의 수요가 대폭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샘물을 먹던 사람들이 우물물을 먹는 것일 뿐이니 요새 말로 갈아탄 것이다.

샘이나 우물이나 고이면 썩는 것이지 않은가. 우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물을 퍼올려야 했으니 늘 새로운 물과 같았다. 샘물도 항상 솟구쳐 흘렀지만 돌보는 이가 줄어들어 샘터 주위에 이끼가 끼기 시작했다. 그 샘이 오래된 것이었으니 고약한 이끼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 샘터 전체를 뒤덮으려 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걷어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물을 먹으러 우물이나 샘터를 찾는 사람인가, 아니면 물을 관리하는 사람인가.

나는 이 칼럼난에서도 두어 차례 말한 바 있지만 전통과 현재 그리고 미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오래되었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도 아니다. 전통은 관리되어야 하며 항상 현재에 비추어 조금씩 변화와 혁신을 꾀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빛나는 전통이 될 수 있다. 과거를 본다는 것은 오늘의 내가 과거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되돌아보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된 과거는 먼 미래를 담보하고 있는 법이다.

나는 어느 날 불현듯 손바닥 뒤집듯 달라지는 혁신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하루에 1㎜씩이라도 달라져서 스스로 달라졌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져 있기를 기대한다. ‘샘터’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앞에 비쳤듯 누구보다 ‘샘터’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졌던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했다. 그것은 비단 ‘샘터’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종이잡지라는 매체 전반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더구나 소리 없이 조용히 떠나도 좋았을 것을 동네방네 소문까지 내서 ‘샘터’를 빌미로 종이잡지와 잡지산업이 사양길이네 어쩌네 해대니 내심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변화된 시대 속에서 독특한 콘텐츠를 무기로 삼아 치열하게 펴내는 종이잡지들도 많으며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치는 않지만 성공사례들도 눈에 띈다. 더불어 나는 아직도 종이의 질감과 채 마르지 않은 잉크냄새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이 무수히 많다고 믿고 있다. 사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준비된 독자들이다. 다만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가 듬뿍 담긴 새로운 형식의 종이잡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외환위기 당시 무수히 들은 말 중 하나는 위기는 기회라는 것이다. 도태되는 것들이 있으면 그 자리에 새로운 것들이 싹을 틔우는 법이다.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되 그 때문에 포기하는 꿈이 없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새로운 시도를 위한 준비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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