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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의문이다. 아무리 ‘제왕적’이란 수식어가 붙는 대통령 권력이지만 최소한의 염치나 두려움도 없는 듯하다. 과거 왕들도 신하들이 통촉 운운하며 반대하면 대개 뜻을 접는다. 고집 피우고 마음대로 하다가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런데 21세기 민주사회의 대통령이 무서운 얼굴로 여당의 원내대표를 찍어내더니 이제는 당 대표까지 깔아뭉개고 있다. 기세로 보면 김무성 대표가 백기 투항해야 끝날 듯하다.

박 대통령이 저렇게 하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계산을 거론한다. 각론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총선 후 국정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한다.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비록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국민참여경선으로 하자고 공약했지만 그것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총선 때마다 정당들은 예외 없이 물갈이 전략을 써와 유권자들이 당연하게 여긴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현역들에 대한 교체지수도 높다. 그러니 대통령으로선 현역의 재공천율이 높은 오픈프라이머리가 유해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누군가. 선거의 여왕 아니던가.

정치인의 모든 행위가 치밀한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건 합리적 오해다.

계산보다는 퍼스낼러티(personality) 때문에 어떤 선택과 판단, 그리고 그에 따른 행위가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 박 대통령의 행위도 퍼스낼러티의 관점에서 더 잘 이해되는 점이 있다. 키워드는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이다. 이를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한다. 보통 선거마다 이기는 사람이라고 새기지만 자나 깨나 오직 선거에만 몰두하는 사람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선거 성패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직에 있다면 그건 위험하다. 자칫 나라 살림이나 서민생활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정부 때 생겨난 ‘헬조선’이란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컨설턴트 중 선거에서 승률이 높으면 흔히 천재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박 대통령에겐 여왕이란 호칭이 붙었다. 언론에서 왕이나 황태자 따위의 용어를 가끔 쓰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박 대통령이 실제로 자신을 왕으로 간주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대통령은 헌법이나 법률, 그리고 다른 기관 등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개인이든 소수든 전횡하지 못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의 권력은 제약이 없다. 만약 박 대통령이 대통령과 왕 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 또한 대단히 위험하다.



일국의 대통령이 여왕 마인드를 갖고 선거에 몰두하고 있으면 그 피해는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정치적 권리를 통해 사회경제적인 몫을 정당하게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한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약자들이 정치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다. 대통령이 힘으로 민주주의가 친서민 체제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면 보통사람들의 삶은 나빠지기 마련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가지 않아야 할 ‘유신’의 길을 가고 있다.

대통령의 유신이 성공할까? 지금 박 대통령은 선거를 겨냥한 여러 포석과 조치를 취하고 있다. 50만이 넘는 병사들에게 특별휴가를 선물로 주고, 노동개혁과 청년희망펀드 등을 통해 젊은 층의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영남 지역과 나이 든 세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에다 젊은 표까지 흡수하면 여권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된다. 게다가 야당의 만성적 부진까지 겹쳐 있으니 얼마나 자신만만하랴.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유신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정부 들어서서 먹고살기가 더 힘들어졌다. 선거성패보다 민생 향상을, 여왕 마인드보다 서민 스타일을 원하는 것이 지금의 민심이다.

나폴레옹은 전쟁 승리를 통해 권력을 얻었고, 전쟁 패배로 쫓겨났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선거로 일어난 박 대통령이 선거로 무너질 수 있다. 그게 세상 이치다. 박 대통령이라고 해서 못난 야당 덕에 마냥 어부지리를 누릴 수는 없다. 야당이 혁신으로 유신에 대응한다면 성패는 명약관화하다. 박 대통령이 선거나 권력게임보다는 민생에 전념하라는 것이 국민 요구다. 8·25 남북합의 후 지지율이 20%포인트 비상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타협과 통합이 답이다. 그래야 나라도 살리고, 선거에도 도움이 된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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