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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민주통합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이 종반전에 접어드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시선은 안철수 원장에게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심’과 ‘모바일심’의 대결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민주당 경선이 정치개혁보다 세력 다툼에 더 힘이 실려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이번 민주당 경선 잡음으로 인해 안 원장이 대변하고 있는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이 반대급부로 더 강해진 느낌마저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정치개혁을 통한 정권교체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야권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팽배해지고 있다. 민주당 후보만으로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예상했던 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경선 흥행성적은 더 이상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증명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민주당 내부는 이상한 낙관주의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더라도 야당은 필요할 테니 국회 내 의석은 어렵지 않게 확보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하는 것일까? 안철수 현상에서 나타나는 정치개혁과 정당혁신에 대한 열망이 민주당 입장에서 탐탁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결국 이런 열망은 민주당 자체의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것이고, 바로 민주당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사들의 물갈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유구한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주당의 전통을 강조하는 내부의 목소리만 도드라질 뿐, 안철수 현상이 요청하고 있는 가치를 혁신의 기준점으로 삼겠다는 입장은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특정 정치세력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라면 대선을 치를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떠돌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후보를 정치 이념과 동일시해서 물의를 일으킨 통합진보당과 유사한 사태가 민주당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독자 출마를 막기 위해 정당 없는 대통령 후보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안 원장에게 적극 구애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지금 목도하고 있는 민주당의 태도이다.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명백하게 야권연대의 의지를 표명한 안 원장에게 “누구편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아직도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민주당이라고 해서 안 원장의 출마를 환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모습드러낸안철수원장 (출처: 경향DB)


이런 판국에 새누리당에서 안 원장에게 불출마를 종용하는 ‘협박’을 가했다는 폭로는 기성정치세력에 대한 반발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생각이다. 이번 폭로는 구태에 사로잡힌 낡은 정치세력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물론 지금 그 대상은 새누리당이지만, 안 원장의 불출마를 바라는 모든 기성 정치인들이 장차 잠정적인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안 원장이 출마선언을 하고 난 이후부터 본격화할 것이 뻔하다. 


민주당과 안 원장의 관계 설정을 위한 ‘밀고 당기기’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관심은 민주당의 태도로 모아질 것이다. 물론 민주당 입장에서야 안 원장이 경선에 참가해서 흥행을 도모해줬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안 원장이 민주당에 입당하는 순간 ‘안철수’라는 이름이 대표했던 정치개혁의 의미는 퇴색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안 원장을 지지하는 대중의 열망이겠지만, 이 열망을 민주당이 고스란히 차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안 원장이 표방하는 가치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를 민주당이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정말 그렇게 정권교체가 중요한 사안이라고 한다면, 안 원장을 지칭해서 정치 아마추어라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그와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안 원장에 대한 지지에서 중요한 것은 ‘안철수’라는 개인이라기보다, 그가 상징하고 있는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대중의 요청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구성하는 정치세력들은 ‘안철수’라는 개인과 경쟁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지지를 정치개혁의 발판으로 삼을 방도를 궁리해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안 원장의 출마를 환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상황은 황당하게 흘러갈 것이다. 신당을 창당하든, 시민후보로 정당 없이 대선에 임하든, 아니면 아예 출마를 포기하든, 민주당과 연계하지 못한 안 원장의 미래는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프로젝트가 실패해서 여당이 재집권한다면, 정당 없는 대선 후보의 문제점에 대해 줄곧 이야기해온 민주당도 일정한 연대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안 원장에 대한 지지를 기회 삼아 기성 정치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통진당 사태로 붕괴한 야권연대의 명분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망쳐놓은 민주주의의 회복이 절실하기에 그토록 정권교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던 민주당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바야흐로 임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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