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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철수 원장이 출마선언을 했다. 10분간 진지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그동안 고심해온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은 안철수라는 이미지에 걸맞은 퍼포먼스였다. 안 원장이 제시한 수사학은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에 정확하게 화답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출마와 정치개혁을 동일선상에 놓음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했다. 구체적인 실천지침이 없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것들에 대한 지지를 확인한 뒤 출마선언이 나왔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말하자면, 출마선언은 <안철수의 생각>과 조응을 이루는 것이다. 정책을 먼저 던져 놓고 반응을 본 뒤에 결정을 내린 모양새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안 원장은 모두에게 익숙한 대통령 후보의 탄생과 전혀 다른 경로를 걸었다. 낯선 것은 새로운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법인데, 안 원장은 이런 현상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다. 정당정치를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정치가 정당을 벗어나면 잘못된 것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정당 바깥에서 이른바 ‘인기’ 하나로 정계에 입문하고 선거에 당선된 사례가 외국에서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위험성은 있지만, 안 원장이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정당정치와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반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부의 역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는 거꾸로 생각하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갈망을 수렴시키는 기표로 안 원장이 부각된 것이다.
안 원장의 출마선언은 이런 정세를 적절하게 고려한 수사학으로 꾸며져 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출마선언을 통해 <안철수의 생각>에서 개진된 ‘구체제’에 대한 반감을 다시 확인시켰다. 후보 단일화 논의도 사실상 ‘민주당의 개혁’이 없다면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런 의사의 천명은 정치공학적인 발상으로 집권을 최종 목표로 삼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대통령 한번 하겠다고 출마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치개혁의 중심에 자신을 놓겠다는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안 원장의 출마선언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는 출사표의 성격도 띠고 있는 셈이다.
발언하는 안철수 후보 (출처:경향DB)
그렇다면 정치인 안철수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성공을 예측하기는 어렵겠지만, 그의 정계입문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안 원장의 등장이 왜 중요한 것일까? 정치인 안철수는 분명히 기존의 정치질서에 이질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정당정치를 구성하고 유지했던 양당은 과거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정당은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도로 손쉽게 나뉠 수 있었다.
그러나 안 원장은 이 구도에서 민주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민주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민주당의 민주가 반독재 투쟁을 통해 형성된 개념이라면, 안 원장의 민주는 시장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전자보다 후자에 훨씬 더 친화성을 느끼는 정서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정통성을 개발독재에 두는 세력이든, 반대로 반독재 민주화에 두는 세력이든 안 원장이 대표하는 세력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낡은 가치의 구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안철수의 가치’ 대 ‘기성 정치권의 가치’라는 대립전선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안철수 지지자들 일각에서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할 상대는 박근혜 후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기존의 정치구도에서 바라보면 이런 주장들은 철부지들의 불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대선’의 구도가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슷한 상황은 2007년 대선에서 징조를 보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과 그 원인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도덕적 타락이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민주화의 성과로 인정하는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라기보다 국민의 대변자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있다. 여의도 정치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명박 후보 역시 이런 분위기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2007년에 비해 지금은 더욱 정당 바깥의 후보에게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으로부터 직접적인 수혜를 받은 이가 바로 안 원장이다. 물론 2012년 대선이 2007년 대선을 닮아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은 엄연히 다르다. 2007년은 경제개혁이 핵심이었다면, 2012년은 정치개혁이다. 안 원장은 출마선언에서 이 변화를 꿰뚫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과시했다. 과연 그가 ‘착한 이명박’에 그치고 말지, 아니면 더 나아가 정치개혁을 통해 안철수 대통령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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