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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와 220만 대학생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에서 ‘청년의 꿈이 나라의 미래를 바꾼다’를 주제로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좌석에 앉아 있던 한 대학생이 강연 도중 피켓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서울대생 박종철씨의 얼굴 사진과 짤막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연사로 초청된 정의화 국회의장이 무대에 서 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하며 사건의 은폐·축소를 방조한 의혹을 받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정 의장이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던 때였다. 결국 정 의장은 지난 6일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했고,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채 새누리당 의원들 단독으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7일 이 대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번에 실망을 참 많이 했다”고 했다. 목소리에선 답답한 심정이 전해졌다. 그는 “독재에 대한 항거는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것인데, 그렇게 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얻게 됐는데, 그 노력을 짓밟고 대법관 자리에 올라갔다는 데 분노한다”고 했다.

대학생과 시민단체는 물론 현직 판사들까지 박 후보자의 국회 인준을 반대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은폐한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사람이 대법관 자리에 오르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일 뿐 아니라 사법부의 신뢰와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박 열사의 유족들은 ‘열사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박 열사의 형 종부씨는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에 올라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 임명반대 공동 성명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서울대 1학년 고근형씨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1987년 민주항쟁,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관해 배웠다. 국민적 합의가 끝난 줄 알았다”며 “지금까지 제가 배운 역사는 뭐가 되나, 그동안 어른들이 가르친 게 뭐가 되나”라고 물었다.

박 후보자는 여기에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8일 그의 대법관 취임식이 열린다.


이혜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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