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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데스크는 지난 10월 경향신문이 만든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성불평등한 표현을 들여다보는 일을 한다.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꾸고 ‘유모차’를 ‘유아차’로, ‘맘카페’를 ‘육아카페’로 바꾼다. ‘워킹대디’라는 말은 없는데 ‘워킹맘’을 쓰는 것은 차별적이니 다른 대안어를 써보자고 제안한다. 매일 출산, 돌봄, 육아가 여성의 책임인 것처럼 전제한 표현들을 바꿔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허허로웠다. 지난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9명, 0.79명의 원인은 태산처럼 복잡하고 풀릴 기미가 없는데 풀 몇 개를 뽑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였을 거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후퇴하기 시작하더니 거꾸로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더니,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논의에서 ‘성평등’과 ‘성소수자’를 삭제하더니 ‘재생산권’까지 삭제했다. 교육부에서는 의견 수렴 과정에서 ‘낙태 허용을 우려’하는 의견이 많이 들어왔다고 해명했다.

재생산권은 임신중단에 한정된 논의가 아니다. 국가가 인구를 조절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여성의 몸을 규율했던 시대 재생산권은 임신과 출산에 있어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 논의로 출발했지만 아이를 갖지 않을 권리를 넘어 원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 안전하게 아이를 낳아서 키울 권리를 포함하게 되면서 보편의 인권으로 커져왔다. 유엔 국제인구개발회의에서 이를 인권으로 인정한 것이 1994년, 무려 28년 전이다.

성평등은 점점 멀어지는 것 아닐까

개인이 어떤 사회적 조건 아래 있어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논의가 한국에서는 임신중단을 우려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대착오적인 논의를 지켜보며 무력감을 느낄 때 골드만삭스가 ‘2075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를 냈다.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로 2075년 경제 규모가 필리핀보다 작아진다”는 것이다. 주요 언론이 골드만삭스 보고서를 보도했다. 한국 사회에서 ‘저출생 위기’는 경제 규모, 성장률 논의가 나올 때만 강력해진다. 이러한 접근법은 ‘저출생 위기’를 풀 실마리조차 얻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국가가 인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 이상을 못 넘어서는지 모른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실마리라 생각하지만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친구가 자신의 남편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계속 경력이 ‘단절’됐고 보다 못한 공무원인 남편이 육아휴직을 결단(?)했다고 했다. “잘하셨네”라는 내 대답이 그의 다음 얘기에 무색해졌다. 육아휴직 후 다시 조직으로 돌아간 남편이 ‘승포자(승진포기자)’가 됐고 우울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무원조차 ‘승포자’가 되어 우울감을 얻는다면 도대체 이 사회 어떤 남성들이 돌봄을 자기 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노동 시장에서의 성불평등성의 문제를 취재하자 한 공무원은 말했다.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많이 늘지 않았나요?” 맞다. 제도는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져 있고 이용자도 늘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냉정하게 들여다보자. 제도가 마련된 만큼 우리 모두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이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 배우자 출산휴가를 가려 해도 “애는 와이프가 낳는데 가서 할 게 뭐가 있어”라며 회사에 붙잡혀 있던 선배들 세대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보는가. 돌봄노동을 임금노동의 하부 구조에 매어두는 한 이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출생률은 숫자로 답할 것

성별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가입한 원년인 1996년부터 꼴찌다. 26년 동안 꼴찌인 성별임금격차는 구조적 성차별, 노동시장에서의 성불평등의 결과이지만 2022년 여성가족부 장관은 열심히도 여성을 지우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고딩엄빠>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게 좋은 프로그램”이라며 철없는 얘기나 하고 있다. 제발 끝모르는 것처럼 거꾸로 가면서 합계출산율을 거론하지 마라. 선진국들은 주 4일제 도입으로 생산성 향상을 논의하는 때에 장시간 노동을 더욱더 장시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정부와 여당은 너무나 한가롭다. 차라리 저출산도, 저출생도 잘 모르지만 그 원인에 손대긴 싫고 경제는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라. 그러나 그럴수록 숫자는 답할 것이다. 더욱 하락하는 것으로.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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