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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세계관의 반영이다. 세계에 대한 해석이 들어간다. 소설가 포스터의 유명한 정리를 응용해보자. “왕이 죽었고, 왕비가 죽었다.” 이것은 스토리다. “왕이 죽었고, 왕비가 슬퍼했고, 그래서 죽었다.” 이것은 플롯이다. 해석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왕이 죽었고, 왕비가 기뻐서 웃다가, 숨이 넘어가서 죽었다.” 같은 스토리의 다른 플롯이다. 해석이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다. 왕의 죽음에 왕비가 웃음을 터뜨리는 세계는 어둡고 비뚤어진 곳이다.

서사시와 고대 비극의 시대에는 주인공은 그의 능력 때문에 성공하고 또한 같은 능력 때문에 몰락하였다.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를 푸는 솜씨 덕분에 왕이 되었으나, 자기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어 몰락하였다. 메데이아는 가족도 저버리는 강한 기개로 이아손의 왕비가 되었으나,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기 가족을 죽였다. 사마천의 <사기>나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 같은 옛 역사책을 보면, 신화가 아닌 역사 서술도 그러했다. 세상일은 단순하지 않았다. 인물은 거대한 힘 덕분에 성공했지만 바로 그 거대한 힘 탓에 몰락했다.

시대가 변하고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 달라지자, 이야기 속 세계관도 변했다. 주인공은 미덕 때문에 성공하지만 그와 반대되는 악덕 때문에 몰락한다. 맥베스는 유능한 장군이라 성공하지만 지나친 야심 때문에 파멸한다. 한 인물 속의 미덕과 악덕, 장점과 단점, 빛과 어둠. 좋은 면 아니면 나쁜 면으로 나뉘는 인물은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아쉽다. 인간과 세계는 정말 단순할까?

대중문화의 시대가 되었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이야기는 어떤가? 주인공은 우리 편이라 성공하지만, 주인공을 훼방 놓는 세력 때문에 몰락의 위험을 겪는다. 주인공이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다. 슈퍼맨과 아이언맨처럼, 악덕까지는 아니지만 약점은 있다. 하지만 그 약점을 이용하는 빌런이 나쁜 거다. 히어로와 빌런, 아(我)와 비아(非我), 우리 편 아니면 나쁜 놈. 이야기는 더욱 이해하기 쉬워졌다. 하지만 세상이 정말 그렇게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친구 아니면 적으로 쉽게 나뉘는지, 적의 적은 친구인지, 나는 혼란스럽다. 그리고 이제 웹툰과 웹소설의 시대다. 주인공은 별 노력의 과정도 없이 승리한다. 훼방 놓는 세력은 힘조차 쓰지 못한다.

나는 왜 이런 지적질을 하는가?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인데. 더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면 그만 아닌가? 고대 그리스 비극과 웹 소설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겠는가? 요즘 같은 시대에 불평을 한다는 것은 왠지 고급문화가 어쩌고 타령하는 철지난 선비 놀음 같다. 하지만 오해 마시길, 나는 만화가다. 웹툰과 웹소설이 문제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죄가 없다. 이야기는 세계관의 반영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문제다. 왜 우리는, 우리 시대는,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세상을 단순하게 해석하게 되었나?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졌는데.

<김태권 만화가>

 

 

연재 | 창작의 미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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