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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9유로, 한화 1만2500원이면 기차와 버스 자유 이용. 지난 6~8월 3개월 동안 독일 정부가 시행한 근거리 대중교통 할인 정책이다. 물가와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시민들의 부담을 덜고 탄소배출도 줄이려는 의도였다. 정책의 결과는 놀랍다. 무려 5200만여명이 9유로 티켓을 샀다. 이 나라 성인 모두 한 차례씩 구매한 셈이다. 티켓을 이용한 사람 중 20%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다른 27%는 버스나 전철을 한 달에 한두 번 타는 게 전부였다. 이용객 절반이 자가용을 놔두고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독일 통계청은 이 정책 첫 달인 6월 철도 운송 이동량이 코로나19 이전 같은 시기보다 평균 42%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시기 중거리 도로 교통량은 6% 줄었다.

덕분에 환경도 나아졌다. 시민들이 자동차를 덜 타면서 이 기간 독일의 대기질은 7% 좋아졌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80만t 감소했다고 한다. 이 나라 35만가정이 연간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는 양이다.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현재 탄소배출권 가격 2만1500원을 적용하면 무려 387억원어치 탄소를 절감했다. 대중교통 여건이 열악한 농촌에서는 호응이 없는 한계가 있지만, 물가 상승을 완화하고 탄소배출량도 줄이는 일거양득 정책임은 분명하다. 이런 결과에 힘입어 독일 정부는 내년부터 월 49유로, 한화 6만8000원 정기권을 상시 도입하기로 했다. 그린피스 등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한 월 29유로나 하루 1유로보다 높지만, 수도 베를린의 한 달 정기권 86유로와 프랑크푸르트 78유로보다 저렴하다.

저렴한 대중교통은 이미 여러 나라에 자리 잡고 있다. 룩셈부르크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은 시내 대중교통이 무료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2012년부터 하루 1유로꼴, 연 365유로 시내 정기권을 도입하고 이를 ‘기후티켓’이라 부른다. 스페인은 올해 말까지 국영철도회사 렌페의 열차를 300㎞까지 무료화했다. 우리나라도 무료 대중교통을 제공하지만, 복지 차원일 뿐, 기후위기에 대응해 자가용 이용객을 대중교통으로 유도하는 정책은 아니다. 2018년 서울시의 미세먼지 농도에 따른 일일 무료 대중교통 역시 상시 할인이 아니어서 결이 다르다.

올여름 기름값이 갑자기 오르자 독일은 연방정부가 25억유로, 한화 약 3조5000억원을 풀어 9유로 티켓을 도입했다. 비슷한 시기 우리 정부는 유류세를 감면해 독일의 지출액과 비슷한 금액의 세금 수입이 줄었다고 전문가들은 계산한다. 유류 수요를 줄이지 않고 단지 세금을 깎아 저렴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탄소중립 흐름을 거스른다. 게다가 최근 기름값이 떨어지면서 유류세 감면 정책은 빛이 바랬다. 정책 효과는 기술적으로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 잘라 말하기 힘들지만, 비슷한 재정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낸 정부의 이번 대응은 퍽 아쉽다. 여기서는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는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14%가 수송 분야에서 나왔다. 이 중 도로 위 자동차가 9746만t을 배출해 96.5%를 차지했다. 이 숫자를 줄이기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 중심 친환경 이동수단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도와야 한다.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연재 | 녹색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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