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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 뚜껑을 본 적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마 뚜껑에 써진 브랜드나 색을 살필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 덕후’들은 병뚜껑 안쪽에 고무나 실리콘이 껴 있는지부터 찾는다. 재활용 4대 원칙은 ‘비행분석’(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다)인데 이중 소재 병뚜껑은 이미 재질이 섞여 있는 상태라 재활용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중 병뚜껑을 사용하는 ‘나랑드사이다’에 열렬히 편지를 썼다. 다른 탄산음료처럼 재활용 가능한 병뚜껑으로 교체해달라고 말이다. 며칠 전 동아오츠카는 나랑드사이다를 단일 재질 병뚜껑으로 교체한다고 응답했다.  

그런가 하면 ‘카카오임팩트재단’에서는 회의 음료를 주문하면 일회용컵도 딸려 오는데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의지가 있어도 대안이 없다니! 우리는 다회용컵과 음료를 싸 들고 회의장에 출동했다. 그날 나온 쓰레기는 냅킨 몇 장뿐. 그 소식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더니 배우 임세미님께서 ‘다회용컵 커피차도요’라고 댓글을 남겨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음료 컵, 컵홀더, 컵캐리어 등 모든 것을 재사용하고 동물성 성분도 없는 ‘비건 일회용품 없다방’을 시작했다. 그 소식을 올리자 국내 최초 원두 공정무역 회사 ‘아름다운커피’에서 마침 여성 농부들을 지원하고 탄소저감 방식으로 재배한 원두가 나왔다고 원두를 후원해주신단다. 소셜미디어에서 쓰레기 줄이는 마음들이 대동단결한 결과다. 

하지만 현실은 꽃분홍색이 아니다. 이 작은 승리와 대안은 어쩔 수 없이 나라도 나서야 했던 쓰레기 덕후들의 몸부림에서 시작했다.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 수백 명이 간절히 우주의 기운을 바라며 움직인 결과였다. 영국에 간 한 지인이 “우린 두유에 붙은 플라스틱 빨대 빼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데, 여긴 기업들이 알아서 종이 빨대로 싹 바꾼 거 있지”라고 했다. 제품 하나마다 우주를 감동시키는 노력을 하는 우리 처지에 ‘현타’가 왔단다. 

그래서 환경부 태도에 더욱 울분이 터진다. 환경부는 11월24일부터 매장 내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와 편의점 비닐봉지 등의 사용을 금지한 일회용품 규제를 시작한다. 그런데 시행 전 1년 동안 이를 준비할 시간을 주고도 또다시 1년의 계도기간을 허용한다. 원래 법을 어기면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되는데, 어겨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환경부의 확고한 의지랄까. 불법주차를 신고한들 과태료도 없고 견인도 안 한다면 누가 지킬까. 현재 환경부의 일회용품 규제가 딱 그렇다. ‘국민생활불편앱’에 매장 내 일회용컵을 쓰는 ‘불법’ 카페를 올려봤자 아무 소용 없다. 앞서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6개월 연기한 데 이어 세종·제주에서만 축소 실시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안 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러한 환경부 행정예고에 반대하는 의견을 올리면서 한 쓰레기 덕후가 묻는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죠?” 그러니까 말이다. 언제 환경부가 환경부스러워질까. 그때 정세랑 작가의 소설 한 구절을 떠올렸다.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 내게 위로가 된 이 말을 쓰레기 덕후들에게 전한다. 우리 모두는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징검다리니까, 하는 데까지 후회 없이.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연재 | 녹색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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