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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6년 전 일이다. ‘그린보트’ 두 번째 출항에 여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탔다. 보름 동안 1000명 이상이 한배를 타고 진행하는 연수 과정이라 아이랑 너무 오래 떨어지는 게 힘들어 함께 배에 올랐다. 어찌저찌 일을 보다 첫날 갑자기 아이를 선내에서 잃어버렸다. 8층짜리 건물 크기 크루즈선이라 정신이 아득했다. 나 역시 처음 타보는 배라서 잔뜩 긴장하며 문마다 열고 다녔는데, 어느 문을 하나 열고는 무릎이 꺾여 주저앉았다. 시퍼런 파도가 난간에 들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은 매우 무겁지만 만약에 아이가 이걸 열고 나갔을 생각이 들자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지나가는 우리 직원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나 좀 살려줘”라고 말했다. 여섯 살짜리 아이를 이 배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디서도 안 보인다고 애원을 했다. 선내 방송 후 선내 극장에서 연수 참가자 한 분과 영화를 잘 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이를 길러본 사람들은 이런 경험 한두 번은 해봤을 터이고, 그때 그 기막힘은 아이가 멀쩡하게 커서 해병대 입대를 한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이태원은 우리 집 근처이기도 해서 아이도 종종 친구들을 만난 곳이고 아마 휴가 일정이 조금 늦었다면 핼러윈을 그냥 넘기진 않았을 텐데, 생각만 해도 질식할 것 같다. 보통은 다들 이렇게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어떤 관련성이 없어도 희생된 분들과 그 가족의 고통이 전기처럼 전해진다. 보통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같이 흐느끼고 애통함이 정상이다. 

그런데 보통 이상의 사람들은 아무래도 신체구조가 다른 것 같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전을 책임지는 수장들의 표정이 참 대단해서 잊히지가 않는다. 한 분의 얼굴은 너무 굳어서 옆에 있는 분을 칠 것 같았고 또 한 분은 이거 제가 한 거 아니에요, 제 책임 아니에요를 주장하느라 큰 눈을 굴리고 있었다. 또 어떤 분은 평소에도 마지못해 사는 표정으로 맹탕 답변으로 일관하더니, 농담이랍시고 상황 판단 못한 파안대소로 보는 사람을 돌게 만들었다. 너무 주관적인 판단 아니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 서울 한가운데서 젊은 목숨을 156명이나 잃었는데, 그것도 책임자가, 첫 발언으로, 애도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이 데면데면 말할 때 편안하게 들어줄 국민은 없다. 

사람의 의사소통에 말의 역할은 7%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몸이 다 전해준다. 시선, 눈동자, 눈썹, 손동작, 특이한 몸짓, 어깨모양, 다리동작 같은 몸짓과 어조, 표정 등 비언어적인 것들이 감투 쓴 저 사람들이 이 대참사 앞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대하는지 웅변해주고 있다. 어떤 맥락 속에서 상대의 반응이 어떤 뜻이라는 것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을 감성지능이라 한다. 이 능력을 지수화한 것을 감성지수(EQ)라 하는데 통상 학습능력인 지능(IQ)과는 별개로 자기 기분을 자각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좌절해도 자존심을 유지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알아서 협력하는 능력 등을 의미한다. IQ 높은 수재들이 어쩌다가 EQ엔 맹탕이 되었을까. ‘EQ가 낮은 정치인’이란 ‘뜨거운 얼음’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언어도단이다. 경제도 어렵고 지진에, 싱크홀에, 기계에 끼여 죽는 청춘까지… 겨울도 오기 전에 국민 맘은 얼어붙었다. 마음을 먼저 살피는 지도자, 보고 싶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연재 | 녹색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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