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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한 유명가수가 사망했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내렸다. 가족들도 이를 받아들여 바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그 가수는 나쁘다. 자살이란 최악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나쁘다. 앞으로 그의 가족들은 물론 그를 좋아했던 팬들도 슬픔과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는 남은 사람들에게 불행만을 더해주고 떠났다. 그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관심 없다. 그가 친구에게 남겼다는 유서 따위도 보고 싶지 않다.

지난 8월 경기 광명시 자살예방센터가 하안동에서 ‘찾아가는 희망상담소’를 열어 우울증 자가검진을 진행하고 있다. 광명시 자살예방센터 제공

이렇게 부정적으로 쓰는 것은 그에게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알려야 한다’고 기자들에게 강조한다. 또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어떠한 미화나 합리화도 피해야 한다’고 권한다. 왜냐하면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보도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널리 퍼지는 유명인의 자살 소식은 그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의 죽음이 알려진 날, 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담당자들은 밤새 언론에 나오는 기사를 모니터링 했다. 특히 자살 방법과 장소 등을 자세히 묘사한 기사를 찾아낸 뒤 해당 기자나 매체에게 연락해 수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온갖 인터넷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모두 처리할 수는 없었다. 복지부 담당자는 “수능이 끝난지 얼마 안된터라 청소년들이 한창 예민할 때인데 어쩌면 좋냐”며 걱정했다.

2013년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 이후 한국의 자살자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조사했다. 2005~2008년 목숨을 끊은 배우와 가수 5명이 조사 대상이었다. 그들이 명을 달리한 뒤 2개월간 발생한 한국의 자살자수를 전년도 같은 기간, 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전년과 후년의 평균치보다 30% 가량이나 자살자수가 많았다. 특히 2008년 10월 배우 최진실씨가 명을 달리했을 때에는 49%나 자살자수가 늘어났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다. 자살을 한 사람이 유명하면 유명할 수록, 화제가 되면 될 수록 영향을 받는 사람의 수도 급속히 늘어난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언론이 아예 자살 보도를 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유명인의 죽음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다. 또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만 빼먹을 수도 없다. 차선책은 보도를 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악영향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첫번째로 ‘자살보도 최소화’를 권고하고 있기는 하다

우선 자살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를 해서는 안된다. 자살장소도 가급적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자살자를 미화하거나 영웅시하는 것 역시 금물이다. 자살자의 유서를 소개하는 것 역시 자살미화가 될 수 있다. 자살이 어떤 문제의 해결책으로 작용했다는 인상도 줘서는 안된다. 억울한 피해자가 목숨을 끊음으로써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결국 가해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누군가에게는 속시원함을 주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살 충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살의 폐해와 고통을 아주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경향신문부터 실천하면 될 것을 이리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일부’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한다고 해도 SNS에서 유통되는 선정적인 기사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발표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 전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살사건이나 자살과 관련된 사안을 보도하는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로 그러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사람, 특히 삶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청소년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이 문장이 너무 길다면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마음에 담아두자 ‘자살은 나쁘다. 아주 나쁘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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