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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동물을 꼽으라면 아마 오리너구리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오리너구리는 호주의 알프스라 불리는 동부의 산악지대나 태즈메이니아 섬에 서식한다. 주로 개울이나 강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수달이나 비버와 자주 비교된다. 오리너구리는 포유류로 분류되지만 조류와 심지어 파충류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먼저 이 녀석의 모피는 수달의 모피처럼 아주 부드럽고 방수 능력이 뛰어나다. 긴털과 속털로 구성된 이중 구조의 모피는 그 사이로 공기를 가둘 수 있다.

그래서 오리너구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모피의 공기층이 방수와 보온 기능을 한다. 이 녀석의 속털은 수달의 털보다 밀도가 높다. 그래서 수달과 비슷하게 20세기 초반 많은 사냥꾼들에게 희생당하기도 하였다. 이런 오리너구리의 털은 포유류의 특징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대부분의 포유류는 주로 새끼를 낳아 번식하지만 오리너구리는 껍질이 있는 커다란 알을 낳는다. 이런 알을 낳는 동물은 조류와 파충류이다. 조류의 알은 껍데기가 딱딱하고 탄성이 없어 깨지기 쉽다. 이에 비해 파충류의 알은 껍데기가 가죽처럼 질기고 탄성이 좋아 잘 깨지지 않는다. 오리너구리의 알은 파충류의 알처럼 질기고 탄성이 좋다.

마지막으로 이 녀석의 부리는 ‘도널드덕’의 부리처럼 멋지다. 게다가 오리처럼 물갈퀴가 있는 발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조류의 특징이다.

오리너구리가 이렇게 기이한 특징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포유류의 조상이 파충류로부터 갈라지는 초기에 나타난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찰스 다윈이 말했듯이 오리너구리는 화석에서나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행운은 오리너구리가 호주라는 외딴 섬에 처박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리너구리의 존재가 유럽의 과학자들에게 처음 알려졌을 때, 그들은 날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국의 박물학자 조지 쇼는 오리너구리의 표본을 처음 보았을 때 부리와 머리의 연결 부위에 꿰맨 흔적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야생에서 오리너구리를 관찰하기는 매우 어렵다. 보통 밤에 물속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시드니의 타롱가(Taronga) 동물원을 탐방했을 때 오리너구리를 먼저 찾았다.

‘타롱가’는 호주 원주민 말로 ‘멋진 전망’이란 의미이다. 아니나 다를까 타롱가 동물원에서 내려다보니 항구 맞은편에 있는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리지, 시드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타롱가 동물원의 오리너구리 관에 들어서자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커다란 수조가 양쪽으로 있고, 그중 하나에서는 오리너구리가 활동하고 있었다. 오리너구리의 먹이인 가재가 여기저기 있었고, 수조 바닥에는 먹다 남은 가재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이곳은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사진 찍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야행성 동물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였다.

오리너구리는 먹이를 찾을 때 눈도 감고, 귀도 막아 버린다. 그렇다고 후각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그럼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먹이를 찾을까? 오리너구리의 강력한 감각기관은 바로 부리이다. 오리너구리는 부리로 개울 밑바닥을 뒤적이곤 한다. 그러나 이런 촉각보다 더 중요한 감각이 부리에 있다. 오리너구리는 부리로 전기를 감지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미약한 전기를 항상 띠고 있다. 예를 들면 근육을 수축하거나 신경에서 신호가 전달될 때 전기가 발생한다. 오리너구리는 이를 감지하여 먹이를 찾을 수 있다. 개울 밑바닥에 묻혀 있는 먹이라 할지라도 전기를 감지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생명체가 발생시키는 전기를 탐지하는 경우를 수동적 전기의사소통이라 한다. 전기뱀장어와 같이 스스로 강력한 전기를 일으키는 경우는 능동적 전기의사소통이다. 전기감각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동물들은 수동적 의사소통을 한다.

전기 신호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빛, 소리 또는 화학 신호와 비교해 제약이 많다. 공기는 훌륭한 절연체이므로 육상에 살고 있는 동물은 전기 신호를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기 감각을 사용하는 동물은 민물이나 바다에만 존재한다. 전기 신호는 멀리 전달하기 어려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효과적이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전기 신호는 탁한 물속이나, 어두운 장소와 같이 다른 감각 기관이 잘 작동하지 않는 환경에서 주로 이용된다.

전기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초기 척추동물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상어와 같이 척추동물 초기에 진화한 원시어류는 잘 발달된 전기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원시어류에서 경골어류(bony fish)로 진화하면서 전기감각은 퇴화하였다. 그래서 현존하는 물고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골어류는 더 이상 전기감각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골어류인 전기뱀장어나 전기가오리는 전기감각이 있다. 심지어 일부 양서류나 오리너구리와 같은 포유류도 전기감각이 있다. 이 경우 퇴화했던 전기감각을 다시 획득했다고 생각한다. 퇴화한 형질은 그 유전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다시 획득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어두운 수족관에서 오리너구리가 유영하는 모습을 열심히 관찰했다. 특히 오리너구리가 먹이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탐지하려고 부리를 좌우로 휘저으며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 눈을 감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꼭 보고 싶었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기 어려웠지만 오리너구리의 생김새와 행동을 보면 기이한 동물임에 분명하다. 설마 있을까 싶었던 기이한 동물인 오리너구리, 그리나 지금은 초기 포유류 진화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장이권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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