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해 11월11일,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고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급격히 확산되던 때에 연극인들은 대학로X포럼 긴급토론회 ‘검열과 예술정책 파행,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개최했다. 당시는 특검 수사가 시작되기 전으로 블랙리스트 실행을 증언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한편 김기춘 전 비서실장·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구속과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서가 다투어 발표되던 때였다. 토론회에서는 ‘검열백서’ 제작이 중요한 안건으로 논의되었다. 준비모임을 거쳐 12월26일 ‘검열백서준비위원회 발족 포럼’이 열림으로써 검열백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편, 이후 특검 수사가 시작되고 김기춘·조윤선은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특검은 수사를 종료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주모자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블랙리스트 지시 및 블랙리스트 실행에 소극적으로 임한 1급 공무원 3명의 사직 강요 등이 포함된 14가지 혐의로 현재 구속 수감 중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며 지난해 11월부터 광화문광장에 텐트촌을 꾸리고 노숙농성을 벌인 문화예술인과 노동자들이 3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광화문캠핑촌’ 해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리고 검열백서 첫 번째 포럼이 지난 3월28일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열렸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진행되고 있던 시간이었다. 검열백서 조사팀은 그동안 발표된 언론기사, 수사결과, 증언과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사건발생, 의혹제기, 사건확인 등 시간순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이러한 개관만으로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여러 의혹들이 드러났다. 사건개관에 이어 ‘예술검열 관련 주요 공공기관 및 책임자에 대한 질문들’도 발표되었다. 예를 들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을 전후하여 이 작품을 연출한 고선웅씨를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가 있었다고 발표되었는데, 이 공연을 제작한 국립극단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묻고 있다. 이날 발표된 질문 17개는 대상 기관별로 재정리해 해당 기관에 발송될 예정이며 이에 대한 답변도 포럼을 통해 공개한다고 한다.

이번 포럼은 검열백서 활동이 처음 시작될 때 제기됐던 기대와 우려에서는 비켜서 있다. 당시 관심은 과연 검열백서 활동이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을까에 모아졌는데, 고발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혹여 일방적 폭로가 혼란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기대 혹은 우려와 달리 검열백서 조사팀이 새롭게 밝혀낸 ‘사실’은 없다. 발표 내용은 이미 공개돼 있는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다. 특검 등 공적 수사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의 주모자를 향해 달려갔다면, 검열백서 조사팀은 검열이 어떠한 과정으로 실행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공적 기관의 책임자들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기록하고 남겨진 의혹을 묻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극인들은 수사권도 없고 공적 기구도 아닌 검열백서위원회를 만들고 직접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려움도 있다. 자료가 방대하다는 점도 있지만 법적 지위가 없는 민간조직이기에 특검 수사기록 등 비공개 자료에 접근할 수 없다. 이미 비공개 자료에 밝혀져 있는 내용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검토하고 분석하면서 질문들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인들이 직접 기록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문제의식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박근혜 정부의 검열을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 배제의 문제로 이해한다.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후보들도 차기 정부에서 검열은 없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연극인들의 문제의식은 거기에서 나아간다. 왜 우리 사회의 공공기관과 그 책임자들은 검열이라는 범죄행위의 실행자들이 되었는가이다. 윤리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은 그저 행정의 대상일 뿐인가. 검열의 실행에 대한 기록과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의 공공적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과 그 책임자들은 검열백서의 질문에 이제라도 성실히 답변하길 바란다. 검열백서위원회는 3월 포럼을 시작으로 세 번의 공개 포럼을 거쳐 올 연말 검열백서를 출판할 예정이다.

김소연 | 연극평론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