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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치레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럴 때, ‘병’은 타성에 젖은 삶을 깨우는 죽비다. 코로나19 이후 개인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 이번에 우리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항공기, 기차, 자동차의 움직임이 줄고 공장이 멈추자, 자연이 돌아왔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잿빛 하늘은 가고 파란 하늘이 돌아왔다. 인도 북부 펀자브주에는 히말라야 경관이 돌아왔다. 우리가 성장을 위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아니 무슨 짓을 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면 이 변화도 다시 사라질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성장을 한다고 자연생태계를 계속 파괴하면, 바이러스 감염과 재난은 더 자주 더 심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 과거가 우리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적 전환이 절박하다.

사회적 전환을 위해 정부와 여당이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첫째, 재난의 최전선이다. 그리 가서, 들으라. 재난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 거기에 답을 가져다주지 말고, 거기에서 답을 구하라. 답은 현장에 있다. 이번에 바이러스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취약 고리를 직면해야 한다. 특히 우리 노동인구의 절반이 되는 각종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들어야 한다. 재난에 무방비 상태인 노동자들이 자기 체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선의가 아니라 ‘제도’가 필요하다.

둘째, 재난의 뿌리다. 그리 가서, 보라. 지금까지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이름으로 자본이 어디서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변해왔다. 세계화는 최소의 비용으로 인간과 자연에서 노동력과 자원을 최대한 뽑아내는 데 최적화된 ‘긴밀한 연계’를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사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의 눈으로 보면 세계화는 세상의 본질에 속한다. 그러나 생태적 연결은 배타적 이윤을 주된 목표로 하는 ‘긴밀한 연계’와 그 성격이 판이하다. 모든 것을 잇고 있는 ‘근원적 유대’는 인간 서로에게 존엄과 평등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존중과 돌봄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느슨한 연계’다. 우리가 만든 ‘긴밀한 연계’를 자연의 ‘느슨한 연계’에 부합하게 바꿔야 한다.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법이다. ‘더 빠르게, 더 많이’를 외쳐온 우리에게 코로나19는 ‘천천히, 적절하게’를 주문한다.

재난에 대비한 사회적 체력 강화에 ‘먹을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한때였지만, 우리도 마스크 부족 사태를 겪었다. 그때 마스크가 아니라 식량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에 몇몇 식량 수출국이 쌀 수출을 금지했던 일을 눈여겨봐야 한다. 국가 간 단절과 고립은 이번보다 훨씬 더 오래갈 수 있다. 기후변화도 세계의 농사에 중대한 위험 요소다. 다수의 악재가 한꺼번에 일어날 때 들이닥칠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4차 산업이 급하다는 우리에게 코로나19는 ‘농업’이 급하다고 주문한다.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K방역’으로 방역의 새 길을 열었다. 우리 정치는 ‘K전환’이라는 새 길을 열 수 있을까? 정부와 ‘거대’ 여당의 실력을 기대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hyunchul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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