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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는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한 대문호 커트 보니것의 말을 사실로 입증했다. 그는 “지구의 면역체계는 신종 독감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선 그 편이 나을 걸세”라 했다. 이토록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봄이 언제였더라? 출입 통제된 브라질 해변에서 멸종위기 바다거북 97마리가 부화했다. 관광객이 끊기자 베네치아 운하의 물이 투명하게 맑아지더니 급기야 60년 만에 돌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코로나19는 인류에 대한 ‘셀프 디스’를 시전한 ‘자발적 인류멸종운동’을 돌아보게 한다. 사라지기는커녕 발걸음만 줄여도 지구가 깨끗해지는구나. 다시 커트 보니것으로 돌아오자면 원자력과 화석연료로 온갖 열역학 소동을 피우면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파괴하는 우리는 정녕 지구의 암적 존재인가.

코로나19로 인해 일회용 마스크와 비닐장갑, 택배 박스 등이 무수히 버려지고 있다. 이번 총선 투표에서 63빌딩 7개 높이 비닐장갑이 사용되고 버려졌다. 그렇게 뽑은 국회의원 중 몇 명이나 지구를 위해 나서줄까. 또한 집에 콕 박혀 심심해 죽겠는 사람들이 인터넷 선을 타고 부유한다. ‘텔레콤 이탈리아’는 이동이 제한되면서 인터넷 트래픽이 70% 급증했다고 밝혔다. 웹서핑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개미 눈물만큼이나 적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데이터 센터에 접속한 결과 인터넷 관련 산업은 항공 산업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2025년에는 두 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예정이다.

특히 동영상은 매 순간 사진을 이어 붙여 움직이게끔 보이는 밀도 높은 데이터 집합체다. 30분간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6.3㎞를 운전하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고로 인터넷 트래픽의 60%는 동영상이 차지한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의 동영상에서 3분의 1, 넷플릭스 등의 영상 스트리밍에서 3분의 1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포르노에서 나온다. 그러니 n번방의 성착취 동영상은 여성과 지구를 잡아먹는, 인류적으로도 지구적으로도 더러운 범죄다.

며칠 전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심심해 죽겠는 사람들의 다른 행동을 보았다. 딸기에서 씨를 핀셋으로 뽑아 싹을 틔운다. 재활용 화분을 만들어 대파 뿌리를 심어 키운다. 수십 장의 천 마스크를 만들어 이웃에 기부한다. 이 가내 수공업은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발전과 현대화로 보는 사회를 거스른다.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달으면 좋겠다. 사람들을 그토록 많이 만나지 않아도 삶은 즐겁다는 것, 삶은 깨지기 쉬워서 소중히 다뤄야 하고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온기를 나누는 서로의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돈과 에너지를 쓰지 않고 몸을 움직여 ‘지금 여기’의 세계를 살아야겠다. 0과 1의 전기적 신호가 되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화면의 세계가 아니라 견디고 애쓰고 서로의 안위를 묻고 계절감을 체화하며. 이반 일리히의 말처럼 “환경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함께 일하고 서로를 보살피는 사회에서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통찰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길뿐이다”. 일에 떠밀려 바쁜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 그리고 지구를 보살피기 위해 몸을 써서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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