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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f(x) 출신의 배우 설리. 그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논쟁적인 연예인 중 하나다. 작품 대신 주로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그의 행보에 쏟아지는 대중들의 관심은 뜨겁다. 최근 몇 달간 탄핵정국을 보내며 연예뉴스가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예외였다. 남자친구와의 결별 소식은 물론이고 인스타그램에 어떤 사진을 올렸는지 시시콜콜 중계가 됐다. 그 사진들은 예외 없이 선정성 논란을 불렀다. 이틀 전엔 그를 옹호하며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긴 배우 김의성까지 덩달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설리는 우리 나이로 올해 스물넷이다. 열다섯 살에 가수로 데뷔해 청순한 이미지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그는 소녀 판타지의 전형이었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안티팬 입장에서 봤을 때). 14살 연상 남자친구와 공개적으로 열애를 하며 가수로서의 본업을 소홀히 했고, 그동안 쌓아온 고운 이미지를 전복하며 대중을 ‘배신’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진은 남자친구와 침대에서 키스하거나, 입안에 휘핑크림을 가득 머금은 모습으로 성적 상상을 부추겼다. 맨살을 드러낸 채 로리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가 하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과감한 차림도 서슴지 않았다.

김의성 SNS 갈무리

도발적인 그를 향한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비난과 악플이었다. 노출증 환자, ‘관심종자’니 하는 원색적 용어부터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공인으로서 너무한 것 아니냐”는 훈계조 충고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그의 대응은 여느 연예인과 달랐다. 대중의 시선을 즐기듯, 조롱하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그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냈고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여전히 표현하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수년째 변함없이 시끌시끌한 것을 보면 종전에 볼 수 없던 설리 같은 유형의 여성 연예인이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하긴 한가 보다.

옹호나 비난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고 이를 표현하는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타인을 향한 혐오나 폭력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그 자체로 인정되기보다는 사회적인 인격을 재단하고 옭아매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다수의 구미에 맞게 왜곡되기 일쑤다. ‘걸레’ 같은 시대착오적 여성 비하 용어도 활발하게 유통된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하면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가 생각난다. 아테네 여성들이 남편들로 하여금 전쟁을 멈추도록 하기 위해 섹스 파업을 일으킨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뤼시스트라테는 아테네 여성들을 불러모아놓고 아래와 같이 선창하며 따라하도록 한다.

“애인이든 남편이든 남자는 어느 누구도 꼿꼿이 세우고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집에서 나는 숫처녀처럼 지내겠습니다. 나는 결코 자진하여 내 남편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싫다는 데도 그이가 완력으로 강요한다면 나는 재미없게 해주고 요분질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천장을 향하여 다리도 들지 않겠습니다. 나는 치즈 강판에 새겨진 암사자처럼 엉덩이를 들고 웅크리지도 않겠습니다.”

기상천외한 발상의 이 작품은 유쾌하고 재미있다. 자유로운 아테네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제뉴스를 통해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주도하는 이 같은 성담론은 언제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까. 야한 묘사가 꽤 있는 <뤼시스트라테>는 ‘고교생 필독서 100권’ 리스트에도 포함되는 고전이다. 이 작품이 써진 것이 기원전 411년. 지금은 2017년이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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