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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보러간 관객은 소리도 영상도 없는 검은 스크린을 수분간 견딘 뒤에야 본편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를 그린 이 영화에 대해 아들 박지만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일부 받아들여 특정 장면의 삭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문제 삼은 것은 영화의 프롤로그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자료화면, 에필로그인 박정희의 장례식 자료화면이었다. 재판부는 <그때 그사람들>을 열고 닫는 다큐멘터리 화면 때문에 관객이 영화 전체를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봤다. 백윤식이 김재규, 송재호가 박정희, 김윤아가 심수봉을 연기하는데도 “실제라는 인식을 심어줄 소지가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보수세력의 비난은 더욱 극심했다. 마치 <그때 그사람들>이 신성모독이라도 저지른 듯, “역사와 우리 자신에 대한 모멸감”(동아일보), “영화역사에 대한 실례”(조선일보)라고 비판했다. 

제작진도 논란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때 그사람들>의 제작 과정은 비밀에 부쳐졌다. 제작자 심재명은 통화에서 “조심했다. 김재규 편을 들거나 박정희를 비난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불경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런 시도, 이야기들을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대였다”고 말했다. 

제작할 때부터 영화가 신문 문화면이 아니라 사회면에서 다뤄지길 원하는 제작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가 영화 외적인 이슈에 휘말리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발생하고, 흥행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그때 그사람들>이 낸 사회적 소음의 크기에 비교하면 흥행 성적은 좋지 못했다. 

‘남산의 부장들’ 속 한 장면. 사진제공_쇼박스

15년이 흘러 같은 소재를 다룬 <남산의 부장들>이 설날 연휴를 앞두고 개봉했다. 단, <그때 그사람들>이 겪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김재규, 박정희라는 이름 대신 김규평, 박통이라는 배역명을 사용했다. ‘박통’은 박정희의 특징적인 귀, ‘전두혁’은 전두환의 머리 모양을 그대로 따왔으면서도 이름을 달리 붙인 뒤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뗀다. <그때 그사람들>이 권력자를 향한 이죽거림이 진득한 수작 블랙코미디였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개성 있는 캐릭터들에 의지하는 진중한 스파이물에 가깝다. 


이제 박정희는 학문적 평가,

예술적 해석, 유희의 대상이다

박정희 시대의 추억으로

정치적 열정에 불붙일 수 없다

박정희 시대를 청산하자며

유권자를 설득할 수도 없다

역사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15년 사이 달라진 것은 영화 분위기만이 아니다.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도 크게 다르다. <남산의 부장들>의 영화적 재미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이 영화를 법정에 끌고가려는 사람은 아직 없다. 신문 사회면에서 다룰 일도 없다. <남산의 부장들>은 동 시기 개봉작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며 조용히 흥행하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이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도 아니다. 영화 속 박정희 청와대는 독재정권 말기의 썩은 내를 풍긴다. 5·16 초기 젊은 군인의 이상 같은 것은 간데없고,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다. 부하에게 일을 믿고 맡긴다고 했다가, 부하가 일을 하고 나면 왜 그리했냐고 타박한다. 영화 속 박정희는 대통령은커녕 작은 조직의 팀장으로도 부적격인 인물이다. 

박정희의 생물학적 후손이자 정치적 후계자였던 박근혜는 대통령 재직 시절 ‘콘크리트 지지층’을 보유하는 행운을 누렸다. 여느 정권들처럼 박근혜 정부도 크고 작은 실수와 무능을 노출했지만, 지지율이 30%대 이하로 곤두박질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으로 정권은 치명상을 입었고, 박근혜는 탄핵과 구속이라는 불명예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도 광화문광장에는 박근혜의 무죄를 주장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떠돌지만, 그들이 다시 사회의 주류가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와 그의 유산에 대한 평가가 일단락된 시기에 나온 영화다. 이제 박정희는 학문적 평가, 예술적 해석, 엔터테인먼트적 유희의 대상이다. 박정희 시대의 추억으로 정치적 열정에 불붙일 수 없고, 박정희 시대를 청산하자며 유권자를 설득할 수도 없다. 역사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남산의 부장들>의 조용한 흥행은 이제 우리가 박정희와 그 유산을 차분하게 평가할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너무나 자주 인용되는, 그러나 여전히 현명한 헤겔의 말을 생각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녘에 날개를 편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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