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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염병은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 창궐해 2년 만에 당시 세계 인구 16억명 중 6억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5000만~1억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참전국에서는 언론을 엄격히 통제하고 검열하던 상황이어서 중립국 스페인 언론만이 사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스페인 언론 덕분에 세계는 이 병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됐다. 진실 보도의 대가치고는 고약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희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특위’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스페인 독감은 예외적인 사례다. 대개 유행성 질병은 첫 발생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불렸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최초의 사례로 꼽히는 1833년 중앙아시아 독감을 필두로 1888년 중국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1977년 소련 독감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에볼라바이러스는 콩코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지카바이러스는 우간다의 지카숲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2015년 한국에서 38명의 사망자를 낸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WHO는 2015년 새로운 인간 감염 질병의 ‘이름 짓기’ 원칙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식품 종류, 문화, 주민·국민, 산업, 직업군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특정 지역과 종교, 민족 공동체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이 29일 서울 서초구청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우한 폐렴’은 지리적 위치 규정에 반한다. WHO는 우한 폐렴을 ‘2019 노벨(novel·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했다. 청와대가 ‘우한 폐렴’을 WHO의 권고에 맞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바꿨다. 병명 정정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보수 성향 누리꾼들은 ‘중국 눈치보기’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우한 폐렴’을 고수해 중국 혐오를 부추기려는 흐름도 감지된다. 

같은 전염병을 놓고 보수는 ‘우한 폐렴’, 진보는 ‘신종 코로나’로 부르고 있다. 전염병 호칭마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리는 판국, 이렇게 나라가 쩍쩍 갈라져 있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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