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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잔인했다. 말 뜻 그대로 ‘인정없고, 아주 모질었다’. 올해 4월은 벚꽃처럼 저물지 않았다. 꽃비가 돼 포도(鋪道) 위에 흩뿌려졌던 벚꽃의 운명과 같지 않았다. “등불처럼 피지만 질 때는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광고인 박웅현) 목련 꽃의 종말과 닮았다. 4월을 잔인하게 한 것은 난무했던 ‘막말’이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지만 막말은 자신을 옭아매는 ‘덫’이 될 수 있다.
중국 오대십국시대의 정치가 풍도(馮道)는 ‘설시(舌詩)’에서 “입은 화를 불러일으키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고 했고, 탈무드는 “살인은 한 사람만 죽이지만 막말은 말한 사람, 듣는 사람, 대상이 된 사람 세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충청 맹주’로 차기 대권까지 꿈꾸다 70일 만에 낙마한 이완구 전 총리를 절멸로 몰고간 것은 ‘진실하지 않은 입’이었다.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막말과 거짓 해명은 ‘역대 2번째 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씌웠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13년 4월 부여·청양 재선거 때 현금 3000만원을 ‘비타 500’ 상자에 담아 전달했다는 경향신문 보도가 나오자 이 전 총리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목숨을 담보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험악하기 짝이 없는 ‘막말’이자 검찰에 대한 ‘협박성 발언’이었다.
한 달여 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구조적 부패의 사슬을 끊어내겠다”(3월12일 대국민담화)며 부패 척결에 ‘결기’까지 내비쳤던 것도 그의 입이었다.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직후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던 그는 성 전 회장과 217차례 통화한 내역이 공개되자 ‘거짓 해명’ 퍼레이드를 마감했다. 그러곤 목련 꽃처럼 펄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하긴 떨어져야 할 때 가지에 매달려 누렇게 변한 목련 꽃은 그 얼마나 추하고, 안쓰러운가.
이 전 총리가 “목숨을 내놓겠다”는 막말 대신 “(부패척결을 위해) 나부터 수사하라”고 했으면 어찌 됐을까. 그는 독일 나치스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지만, 두 번 말하면 의심하고, 세 번 말하면 믿게 된다”는 ‘거짓말의 위력’을 신봉했던 것은 아닐까.
이완구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고 성완종 회장 리스트에 오르며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출처 : 경향DB)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의 막말도 고약했다. 중앙대 교수대표비상대책위원회의 지적처럼 “모욕죄와 협박죄가 적용될 수 있는” 수준이다. 그가 학사 구조개편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겨냥해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쳐줄 것”이란 내용의 e메일은 섬뜩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정도다. 또 교수대표비대위를 ‘Bidet위(비데위)’ 또는 ‘조두(鳥頭·새 대가리)’라고 지칭했다는 대목에선 그의 예전 기발했던 ‘조어(造語)능력’의 악용사례를 보는 듯했다. 그의 거친 입은 ‘독설(毒舌)’과 ‘오럴 해저드’의 경계를 넘나들곤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를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많은 나토(NATO·No Action Talks Only)공화국’, 노동계를 ‘떼로 몰려와서 떼만 쓰는 떼쓰기’, 정치권을 ‘갈등조정 능력을 잃은 3류’에 비유했다. 모두 그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신조어들이다.
박 전 이사장은 중앙대 학사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처럼 돼주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모어는 교황권을 부정하고, 교회의 수장이 되려 했던 헨리 8세에 반기를 든 혐의로 체포돼 런던탑에 갇힌다. “세속적인 인간은 교회의 수장이 될 수 없다”고 했던 모어에겐 반역죄가 적용됐다. 모어는 1535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사형집행관에게 “힘을 내게. 자네 일을 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게.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장은 학사구조 개편에 반대하며 ‘목을 길게 뺀’ 교수들보다 먼저 목련 꽃처럼 펄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세월호 유가족과 장애인들이 경찰의 ‘조롱 섞인 막말’에 가슴을 베인 것도 4월이었다.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가 끝난 뒤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자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현장 방송을 통해 경찰에 물대포를 쏘라고 명령하는가 하면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있던 시민들에게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는 장애인의날인 20일 열린 ‘차별철폐 총투쟁 결의대회’ 때 참가자들을 막고 서 있던 의무경찰에게 “잘못하면 여러분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막말 파문이 일자 그는 서초경찰서로 전보조치됐지만 세월호 유가족과 장애인들은 모멸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막말로 얼룩졌던 4월, 너무 잔인했다. 그런 4월이 간다. 벚꽃은 지고, 목련 꽃은 떨어졌으며, 철쭉은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박구재 | 기획·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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