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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사건은 이명박·박근혜·김기춘 등이 권력과 국민의 세금으로 전 장르에 걸쳐 문화예술계를 검열하여 인위적으로 판을 바꾸고, 이를 통해 전 국민에 대한 이데올로기 통제를 획책한 반헌법·반민주 국가범죄였다. 이 대규모 국가범죄는 청와대·국가정보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중·하위직과 산하 공공기관 사람들까지 부리고 동원했기에 가능했다. 김기춘과 전 문체부 장차관들은 처벌받고 있지만, 하위 실행자·부역자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전·현직 문체부 공무원과 산하기관 직원 130명에 대한 수사 또는 징계를 권고했다. 그러니까 ‘하수인’에 불과할 수 있는 공무원과 산하기관 직원까지 여럿 포함된 것이다. 이러한 단죄는 과도한 것일까?

촛불항쟁 전후에,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지목됐던 공무원들의 행위를 철학자 아렌트가 유태인 학살을 저지른 나치 하수인들을 통해 개념화한 ‘악의 평범성’으로 비판한 담론이 쏟아졌었다. ‘자기 생각’과 언어에 나태한 범상한 인간들이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백만 인간 학살에 연루된 전범들을 한국 공무원들에 비유하는 것에는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 사태의 맥락은 물론 죄의 경중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의 힘없는 을’로서 ‘생계를 잃을까봐 시키는 대로 했다’는 식의 변명도 다 믿지 않는다. ‘조직의 질서’와 ‘생계’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좋은 알리바이 같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뿐 아니라 한국 공무원 사회의 진실 전체도 아닐 거라 생각한다. 연루된 하위직 공무원들이나 산하기관 직원들을 모두 처벌하는 일은 어렵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기록으로 남기고 고위직 연루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서 새삼 두 가지가 궁금하다. 첫째, 촛불과 정권교체 이후 한국 공무원들의 ‘영혼’은 어떻게 됐을까?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처한다지만, 공무원들의 보신주의와 복지부동 때문에 개혁이 더디다거나, ‘○○부 마피아’ 때문에 아무 일도 안된다는 말이 나 같은 서생에게도 들려온다. 공무원들은 정말 영혼을 어디 맡기고 다니는 듯 ‘정치’나 윗사람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지만 기실 5년짜리 정권 따위보다는 공무원 자신들의 조직과 신분보장 제도가 세고 질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부처 장관은 정권 출범 1년이 넘은 지금도 ‘공무원들을 움직여 일하게 하는 것이 내 숙제’라고 말하고 다닌다 한다. 이런 ‘숙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들을 개혁에 나서게 할 설득력과 단호함을 다 갖고 있는지?

둘째, ‘영혼 없음’이나 ‘영혼 털림’이 비단 공무원들만의 일인가? 과연 ‘불안은 영혼을 잠식’했다. 생존주의(‘먹고사니즘’)가 모든 윤리와 공덕을 압도한 유일한 진리처럼 된 것이 세월호 참사나 이명박·박근혜 시대의 퇴행을 불렀던 것이 아니었던가? 사납고 못된 권력은 순응·보신·침묵을 ‘점잖고 합리적인 것’으로 치장해주었다. 이 땅의 삶은 더욱 사소하고 영악해져서, 정상적인(?)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이 시키는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게 됐다. 자결한 아들의 죽음을 삼성전자서비스에 6억원에 팔고 위증도 했다는 아비의 경우는, 어떤 외력이 ‘영혼 없음’을 만드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시민이야 소시민이라 해도, 구성원 전체가 생존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 외에는 가진 게 없는 사회, 청년다운 청년도, 존경할 만한 어른이나 지식인도 없는 좀팽이 공화국, 즉 ‘주체’가 해체된 나라를 경험했다. 대신 얻은 것(?)도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렇고 그런 인간’이라는 무한 상대주의와, 꼰대나 586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깊은 불신이다. ‘계몽충, 오지라퍼, 불편러, 씹선비’ 따위의 신조어들도 생겼는데, 모욕을 담은 이런 단어는 기실 불의에 대한 연루와 공모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여기까지 말하니 창자에서부터 ‘너는 얼마나 정의롭냐?’라든가 ‘너나 잘하세요’ 같은 반박이 메아리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개별자로서의 성찰의 도리와 공동체 정의의 문제를 섞어 문제를 무화하지 않아야 하겠다. ‘윤리’와 ‘생존’이 병존 가능해야 우리 허약한 영혼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터인데, 직업윤리와 사회정의가 그 지렛대겠다. 적폐청산과 영혼의 구제는 다르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법관들의 영혼을 위해서는 ‘양승태 대법원’을, 고용노동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는 ‘이채필 노동부’를 제대로 수사하여 단죄해야 한다. 언론인과 교수의 영혼을 위해서는 언론 개혁과 대학 민주화가 필요하다. 일부 언론과 대학은 적폐의 무책임·무풍 지대로 남아있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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