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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국제사회의 동네북이고, 한국외교가 사면초가 상태라는 말은 더 이상 언론의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 저격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래 늘 내치에는 문제가 있어도 외교만은 잘한다는 식으로 평가되어왔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물론 그런 평가는 순방외교의 겉치레에 의한 가짜 이미지였다. 보수정부 9년 동안 철저한 외교무능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외교 입지는 계속 좁아졌다. 부시 행정부의 애완견이라고 불릴 정도로 절대 친미를 고집하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일본과는 단절했으며, 진보정부 10년간의 남북관계 성과를 폐기함으로써 동북아에서 주도권은커녕 소외돼 버렸다.

이명박 정부의 친미대북강경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변화를 약속하며 집권했던 박근혜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복잡한 동북아 국제정치를 일차방정식의 단순 진영외교로 회귀시켰다. 여전히 대북 제재 일변도와 북한붕괴론에 집착하며, 친미 편승의 외눈박이 외교를 고수했다. 무엇보다 안보위협을 과장하면서 국내권력을 강화하는 소위 ‘갈라치기’로 국민과 국익을 위한 위민외교(爲民外交)를 외면하고 국민을 이용하는 용민외교(用民外交)로 일관했다. 특히 불확실성, 불안정성, 복잡성이 특징인 대외환경에서 다양한 외교카드를 개발·활용해야 함에도, 오히려 전작권 환수 연기, 개성공단 폐지, 사드 배치, 중국 전승절 참석,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대미 무기 구입 등의 카드도 모조리 반대급부도 없이 소진해 버렸다. 게다가 관료와 전문가들까지 주변화시키고 오직 대통령의 심기, 또는 심지어 국정농단자의 심기에 의존한 결과는 우리가 목도하듯이 심대하다.

미국을 방문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월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정부의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주미대사관

국정공백에 이르자 그간 외교 실패의 결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중국 정부의 사드 배치 관련 제재는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으며, 일본은 소녀상과 관련해 적반하장의 한국 때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북한은 한국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미국만을 상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과 대화 요구의 줄타기 행보다. 그리고 트럼프 신행정부는 선거 기간부터 동맹과 무역에서의 불공정성을 빌미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중 압박기조와 중국의 물러서지 않는 강한 대응으로 한국의 선택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 남북관계가 제로상태가 됨으로써 북한 핵 문제가 미·중의 대결구조를 부추기고, 이는 우리의 입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다. 윤병세 장관이 미·중 양측으로부터의 러브콜이라던 평가는 그때도 틀렸고, 지금은 더 틀렸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결격자가 쓸데없이 과욕을 부릴 때가 가장 문제인데, 현재의 권한대행 정부가 바로 그런 경우다. 지난 연말에 방위사업청장이 미국으로 가서 방위분담금 인상을 언급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국무회의 졸속 통과도 모자라서, 올해 벽두에는 김관진 안보실장이 방미해 미국의 압박이나 요구도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사드 조기배치론을 성급하게 던졌다.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라지만 박근혜 정부의 외교무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탄핵정국과 촛불정국으로 인한 외교공백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이전의 외교실패가 초래한 위기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런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황교안 권한대행이 외교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섣부른 외교에 나섬으로써 또 다른 위기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외교의 어려움은 대외환경의 악조건에서도 기인하지만, 그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결과다. 외교의 힘은 협상의 기술보다 국익을 중심에 둔 합리적인 정책결정과 그 정책을 뒷받침하는 국민의 힘으로부터 생기는데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여기서 완전히 실패했다. 이렇게 볼 때 황교안 권한대행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외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정부라는 점에서 오버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멈춰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외교역량을 상황관리에만 집중하고, 이후 새로운 외교의 시도는 물론이고, 기존 외교사안의 진행도 차기 정부로 이양해야 한다. 혹시라도 반드시 진행해야 할 시급한 외교사안일 경우에는 국회와 협의해야 마땅하다. 촛불민심을 망각하고 다시 외교를 이용해 국정농단 세력의 부활을 꿈꾼다면 그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한국이 현재 처한 외교공백이 위기상황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치밀한 차선으로 가야 한다. 다른 국가들의 외교카드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한국의 입장은 가능한 한 뒤로 미뤄야 한다. 주변국의 요구와 압박이 있을 경우에는 한국의 현 상황을 역으로 정당화 수단으로 역이용하면 된다. 제발 부탁한다! 황 대행 정부 가만히 있어라! 다음 정부의 입지를 좁히는 행보를 멈추라. 카드를 숨기고 분석하고 준비하라. 행동하지 마라.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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