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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 인사청문회는 대한민국 엘리트층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그들의 삶이 ‘평균’과 어떻게 다른지를 잘 보여주는 국민교육의 장이다.

왜 한국 사회에서는 ‘능력’과 ‘윤리’가 상충하는 자질인가?

국가정보원장 후보 부인이 임대사업으로 월 125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정치경제학(?) 논쟁도 벌어졌다. 영세 게스트하우스에서 월급 130만원을 받고 일한다는 한 청년 노동자의 문제제기에 대해, 유명한 맛 칼럼니스트가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변호론을 폈다. ‘불법’ 아닌 임대업과 ‘자본수익’(이라 쓰고 불로소득이라 읽는다)이 왜 비판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새 정부의 성격과 개혁의 성패를 좌우할 문제와 연관된 듯하다. 상위 10%가 국부의 66%를 보유하고 하위 50%의 자산은 2% 불과한 사회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불로소득과 상속에 제대로 세금과 대가를 부과하고, 혁신과 노동이 정당한 대접을 받게 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천명대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불로소득과 과다 지대는 ‘흙수저’ ‘금수저’로 표상되는 양극화와 세습자본주의의 핵심 동인이다. 이는 애초의 출발선을 다르게 하여 ‘기회 평등-과정 공정-결과 정의’의 고리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3포’와 ‘5포’란 그 효과에 지나지 않는 것일 테다.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마치 부(富)가 자연이나 하느님이 주신 것처럼 만든다. 그리고 부와 땅의 사회적·공공적 가능성을 몰각한다.

그래서 이 논의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역사’다. 부는 국가의 작용이나 ‘사회’의 구체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근검이나 ‘노오력’ 같은 개인의 영역도 그 작용과 어울렸을 때만 효력을 발한다. 개인의 ‘능력’에도 가족과 사회의 ‘역사’가 배어있다.

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자본주의가 시초의 축적과 발전과정에서 정치권력과 전쟁을 통해 부를 일구고 재편성했다. 부의 시원에는 침략·부역·착취·수탈·사기·특혜 등이 있다.(아파트 한두 채를 가진 보통 시민의 재산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 연조가 100년여밖에 안된 한국 자본주의에는 지주 및 임대업자들의 압도적인 사회적 힘과 ‘불패’의 역사적 이유가 아직 선연하다. 특히 ‘과거청산’이 한번도 이뤄지지 못한 험난한 현대사에서 부는 부역과 결부돼 있다. ‘좋은 가문’ 사람들은 부역자들과 그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그들은 ‘친일파’ 또는 그에 준하는 협력자다. 예컨대 ‘동아일보’를 만든 대지주 김씨 가문의 부 형성에 대해서나, ‘조선일보’ 방씨 가문이 금광 개발로 졸부가 된 사연은 역사학자들이 잘 정리해 두었다.

해방기의 혼란 와중에는 ‘모리배’나 ‘꺼삐딴’이 미군정의 특혜로 일본인이 남긴 재산을 불하받거나 밀수나 매점매석으로 부를 일구었다. 고도성장기에 ‘떡고물’은 비교적 넓게 분배됐고 개천에서 용된 개인들도 여럿 나타났지만, 그래도 특혜금융과 투기가 결정적이고 탁월한(?) 수단이었다. 물론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묵과되고 불법적 축재는 선택적으로 비호됐다.

투기성 위장전입도 이 문제와 연결돼 있겠다. 위장전입의 집중적 대상이 된 지역은 따로 있다. 기득권층이 강남에 유독 집착한 이유는 단순하다. 1970년대 초 개발이 시작된 이래 강남은 지대수익을 올리고 상징권력을 획득하는 데 압도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강남 땅값은 1970년대부터 지금껏 언제나 다른 지역보다 빨리 또 많이 올랐다. 부동산투기와 위장전입은 기득권의 일원이 되는 데 쉽고도 유력한 ‘역사적’ 방법이었다.

요컨대 사연 없는 부는 없고 졸부였던 적 없는 부잣집은 없다. 사연은 거개 정의롭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 기원은 잊히고 근검과 탁월성의 신화로 미화된다.

그런 신화 전체를 부정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완전히 ‘리셋’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초등학생 장래 희망이 임대업자라는 상황을 철저히 성찰하지 않는다면, 본의 아니게 ‘흙’으로 살며 미래를 암담해하는 청년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갖지 않는다면, 불로소득도 ‘능력’으로 간주되고 부가 오로지 개인이 노력한 결과라 착각한다면, 또 이런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사회주의니 빨갱이니 하는 비난이 여전히 먹힌다면, 재산 규모 상위 10% 사람들이 공무와 정치권력도 다 가진다면, 개혁에 대한 모처럼의 밝은 기대는 결국 배반당할 것이다. 새 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부동산시장이 들썩거린다는 불길한 소식도 들려온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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